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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y 22. 2023

익숙해진 신사의 단벌

아버지는 코트를 제외하고 내가 사드린 패딩으로 겨울을 나셨다. 이게 제일 따뜻하시단다. Paul 제공

얼마 전 아버지는 매우 오랜만에 양복을 구입하신 바 있다. 지향하시는 스타일이 꽤나 까다로우셨던 터라 그동안 구매할 수 있는 여러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만류하셨다. 좀처럼 옷가게를 찾지 않으시는 아버지인데 최근 양복을 구입하셨다는 말을 들으니 드디어 원하는 디자인을 찾으셨나 싶었다. 이후 수선해둔 양복을 찾으러 아버지와 동행했다. 가는 길에 아버지는 줄곧 "너무 비싼 양복을 샀나"하는 말을 반복하셨다. 더 저렴한 옷을 구매할 수 있는데 괜히 사치를 한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옷을 찾으신 뒤에도 앞서 언급했던 말을 계속 하시니 가격이 궁금해 물었다. 자켓 하나에 바지 두벌까지 총 100만원이 되지 않았다. 옷을 한 번 구매하면 떨어질 때까지 입으시는 것 치고는 아주 검소한 소비였다. 나는 "좀 더 비싼 것 사입으시면 안 되냐"고 괜한 말을 던지기도 했다. 충분히 그럴 여력이 있음에도 매번 단벌 신사로 다니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양복 좀 비싼 것 같기도 해"라며 연신 옷 구매를 아까워하셨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 옷장을 열면 일주일 남짓 돌려입을 수 있는 양복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상 약속들을 커버할 수 있는 몇가지 옷들이 더 있지만 이마저도 내가 아주 어릴적부터 입어오신 옷들이 다수였다. 내가 시도를 안 해봤겠나. 옷가게 근처를 안 가시니 직접 사드린 적이 몇번 있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끝내 환불을 하라며 받지 않으셨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아들 마음엔 남들 다 입는 옷 아버지도 입고 다니실 수 있지 않나 아쉬운 마음이 지금도 크다.


이 사건(?)이 있고 얼마 후 갑작스럽게 잡힌 취재로 아버지 회사를 방문해야 했었다. 현장엔 차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부득이하게 현장과 가까운 아버지 회사에 주차하기로 한 것이었다. 몇분쯤 있다가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두고 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회사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주차장에서 날 기다리고 계셨다. 이리저리 주차 안내를 해주신 아버지는 어떤 현장으로 가는지, 언제 마치는지 등을 물으셨다. 바쁜 마음에 대충 둘러대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그냥 가기엔 마음이 쓰여 차가 주차된 쪽을 쓱 흘겼는데 아버지는 회사로 올라가지 않으시고 내 차를 빤히 보고 계셨다.


언젠가 내가 차를 바꿀 때 어머니께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다. 첫 차는 그러지 못했지만 두번째 바꾸는 차는 부모로서 좀 보태주고 싶다는 아버지 의사가 있으셨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내 차를 구입하는 것인데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부모는 그런게 아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차를 선택할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괜찮은 차는 어떤 게 있는지 얼마 동안 리스트업도 해보셨단다. 당신께선 출시된지 7년이 넘은 차를 타시면서 말이다.


늘 보던 옷을 입고 계셨던 아버지가 당시 주차장에서 내 차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차 구입에 도움을 주지 못한 걸 안타까워 하셨을까 아니면 벌써 이만큼 장성한 아들이 기특하셨을까. 그것도 아니면 험난한 세상에서 원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셨을까. 아직 묻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셈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 자식이 생기면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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