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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n 20. 2023

지나온 시절 속에서 걷다 보니

학교 곳곳에 불이 환하게 켜진 시설들은 텅 비었었지만 왠지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Paul 제공

얼마 전 친구와 모교 산책을 했다. 기말고사가 막 끝났을 무렵이고 주말인 덕분에 학생들이 남아있지 않은 캠퍼스는 꽤나 조용했다. 그래도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며 아직 학교를 지키고 있는 후배들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와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학교 정류장에 내려 기숙사로 바삐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쉽지 않은 타지 생활을 이겨가고 있는 그들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친구와 나눈 대화는 큰 영양가가 없는 것들이었다. 연애의 장이라고 불리는 분수 앞에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무용과에 다녔던 친구와 만난 적이 있다 등 주책스러운 주제가 절반을 차지했다. 가끔 몸담았던 동아리나 잊지 못할 학과의 추억 등이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어제까진 아니더라도 여전히 생생한 이야기들을 곱씹자니 어느새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단 사실이 실감나 한숨을 퍽 쉬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친구가 들리지 않게 혼자서 내뱉었던 말이다. 학과 수업을 듣고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며 구체적이지 않은 장래에 막연함만 가득했었는데. 그래서인지 여느 친구들처럼 대학시절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없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단다. 원하는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할 때까지 그것만 보고 달려 별다른 추억이 없다고 했다. 그랬기에 얻어낸 지금의 결과물들은 만족스럽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갖지 못한 것에 미련을 두기 마련이지 않나. 후회보다 아쉬움 쪽이었지만 말이다.


특이한 점은 둘 다 이 모교에서 특강을 진행한 이력이 있다는 거다.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의해 주어진 자격이었다. 지나간 특강들을 함께 복기해봤는데 같은 고민을 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됐다. 무엇을 전해야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관해서다. 그냥 지나갈 수 있는 1시간일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계기가 될 테니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친구도 뚜렷한 묘책으로 특강에 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게는 다음 기회가 바로 다음주에 당장 주어진 상황이다. 몇번 계속 하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매우 긴장하고 있다. 후배들 앞에 당당히 서기에 많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자책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한 번 뿐인 대학생활을 나처럼 보내라고 하기엔 놓친 것들이 많으니 선뜻 최고의 돌파구라 추천해 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란 직업은 참 대단하다.


대학시절로 돌아가겠냐 물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아니라는 답을 내놓을 것이다. 별로 이룬 건 없지만 그동안 지나왔던 그 과정을 다시는 밟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되새김질 하는 이유가 뭘까. 각종 시험과 자격증에 치여있는 후배들이 부러운 건 또 왜 그럴까. 정년퇴직을 바라보는 인생의 선배들이 날 볼 때 이런 마음일까 싶다. 저 시절은 딱 한 번 뿐인데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젓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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