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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n 14. 2023

조급함을 갖고 산다는 건

전쟁같던 방송국 사무실이 불 꺼진 모습은 여유로웠고 이는 꽤 이질스러웠다. Paul 제공

얼마 전 국장과 회식을 진행한 바 있다. 분명 회식을 추진할 때 메뉴는 치맥이었는데 실제 장소는 치킨집이 아닌 90년대 스타일의 호프집이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치킨은 구경도 못했고 깐풍기와 닭튀김 그 어딘가를 오가는 메뉴를 열심히 먹어야 했다. 뭐 회식 메뉴가 별로였다는 하소연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 건 아니다. 기억에 남는 국장의 말이 있어서인데 다름 아닌 기자의 특징이다.


97년 입직을 한 국장은 기자로 살아보니 생긴 특성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조급함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이슈를 선점해 보도하려면 빈틈을 보여선 안 되는 직업이지 않나.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성격이었다. 원래 조급함을 갖고 있었다면 더 조급해졌을 것이고 느긋한 성격이었다면 어느새 조급해져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게 기자라고 국장은 말했다.


웃기게도 그 자리에 있던 선후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랬다. 틀린 말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장도, 취재원의 멘트도, 아직 채 발굴되지 않은 이슈도, 이미 나온 이슈라면 파생된 다른 것까지 모두 다른 언론사보다 먼저여야 하는 이 직업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이는 일상에 적잖은 영향을 가져온다. 참을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늘이 두쪽나는 것도 아니고 좀 기다리면 되는데 말이다.


특히 누군가와 연락을 할 때 크게 나타난다. 취재원은 전화를 받을 때가지 하면 되지만 지인들에게 어떻게 그러나. 회신이 올 때까지 한세월 기다리고 있자면 온몸이 쑤시는 느낌이다. 조급함이 반영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지인들이 내게 연락을 주는 경우 놀랍다는 말을 종종 한다. 전화 신호가 한번 가면 바로 받는다는 것이다. 우린 일하며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이슈를 놓치는 경우를 대비해 선배든 후배든 무조건 전화를 바로 받는다. 습관은 참 무섭다.


세상을 조금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조급하면 모든 게 형통하지 않다. 때론 느긋하게 여유를 부려야 비로소 얻고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더 많은 결과물을 가져갈 수도 있지 않은가. 이 당연한 명제를 내게 적용하지 못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접할 때면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멈칫하게 되기도 한다. 일을 그르치는 최고의 조건을 일로써 매번 습득하고 있는데 정말 중요한 순간을 놓칠까 두려운 마음도 있다.


살면서 절충안을 찾아 그것을 매순간 유념해 적용하는 건 어렵다. 안 그런 척은 말 그대로 '척'이란 가면이기에 그렇다. 이같은 습성 마저 나를 받쳐주는 장점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를 면면히 뜯어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꽤나 많은 듯 해 뱉은 말이다. 요즘 계속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걸 보면 정체기인가 얼굴을 긁적이게 된다. 여태 슬럼프가 있었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장 눈 앞에 다가온 슬럼프 같은 이런 생각들이 썩 반갑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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