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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n 28. 2023

초조한 마음으로 결국 찾아낸 현장

취재를 마치고 올려다본 하늘은 환하고 밝았다. Paul 제공

오늘은 꽤 여유로운 하루를 보낼 참이었다. 비도 내리지 않는 화창한 날씨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내리고 이른 점심을 먹어볼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웬걸 휴대전화가 어김없이 울렸고 데스크의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사실 다른 팀원이 가면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좀 기다려봐도 됐었다. 하지만 이 기다림 동안 견딜 수 없는 정적이 팀 단톡에 흐르는 걸 견딜 순 없었다. 어느새 자원한 내 모습을 발견했단 뜻이다.


ㅇㅇ시 ㅇㅇ구 ㅇㅇ동까지만 나와있는 현장을 어떻게 찾아가지 싶었다. 급한 마음에 해당 동에 있는 지하철역을 지도에 찍으니 집에서부터 1시간 남짓이 걸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정체가 일어나면 더 늦어질 수 있겠다 싶어 빠르게 나갈 준비를 마쳤다. 밝혀두자면 데스크 연락을 받았을 당시 내 모습은 세수를 하지 않은 그야말로 자연인의 상태였다. 군대 세면시간을 경험한 게 이처럼 생활에 유용하게 쓰인다니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노래를 틀지도 못할 부산스러운 정신을 챙기며 현장으로 향했다. 신호가 걸리면 정확한 현장 주소 따기를 시도했다. 관련 기사와 리포트, 카페나 블로그 글을 모조리 뒤졌지만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현장 인근에 도착할 때까지 명확한 주소를 얻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 마감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으니 당시 얼마나 똥줄이 탔는지 가늠이 가는가.


데스크에게 요청을 해볼까 생각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썼다가 이내 지웠다. 그것도 바로 찾아가지 못했냐는 핀잔을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찾으면 나올까 싶어 몇가지 단서들을 토대로 현장 찾기에 나섰지만 실패였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관련 리포트를 처음부터 다시 보다가 번뜩이는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 등장한 상인이 모텔을 운영한다는 사실이었다. 곧바로 지도 앱을 켜 검색을 하니 인근에 모텔촌은 딱 한군데였다. 옳다구나 무릎을 치고 그곳을 가니 그토록 마주하고 싶던 현장이 있었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차에서 내려 취재에 들어갔다. 웬 젊은 청년이 정신없게 사진을 찍으며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것을 이상히 여긴 상인은 "누구냐"고 물었다. 기자라고 답하니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예상 밖 친절에 경계심이 들기도 했지만 도움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상인을 따라간 곳은 불이 꺼진 대형 노래빠였다. 열심히 설명하는 상인 옆으로 어둑한 룸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순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오늘 내가 기사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까지 말이다.


오싹한 등골을 붙들고 취재를 마쳤고 현장을 빠져나와 데스크 보고 후 마감을 했다. 생각보다 기사는 잘 써졌고 데스킹도 비교적 빠르게 마쳤다. 그리고 휴대전화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넘어있었다. 그제서야 꼬르륵 거리는 허기짐을 느꼈다. 밥 시간을 넘길 줄은 알았지만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나갔다니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속에 커피를 벌컥벌컥 마신 게 이 시간까지 섭취한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점심 메뉴를 찾을 힘도 없어 무작정 현장 근처 번화가로 갔다. 눈에 들어온 건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였고 한끼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적당한 가격의 세트를 주문했다. 이후 자리에 앉아 포털에 올라온 기사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데스크도 괜찮았다는 짧은 평을 선사해줬다. 삶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이를 더 잘 확인시켜주는 직업을 가진 나를 스스로 토닥여줬다. 어쩌겠나 내가 선택한 일인데 혼잣말을 아주 작게 내뱉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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