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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16. 2023

오래 전 소중했던 꿈을 전해듣고선

부모님이 자라왔던 고향. 이곳을 지날 때 내 나이를 보낼 무렵 어떤 생각을 가지셨을까 궁금해진다. Paul 제공

어제 오전 동생과 식사를 하다가 대뜸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어머니의 꿈이 기자나 국어선생님이었다고. 동생은 "부모님 연애편지에서 발견했는데 신기해. 아들은 기자가 됐고 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대학원을 갔으니까"라고 덧붙였다. 이내 동생은 아무렇지 않은듯 앞에 놓인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곧이어 젓가락을 들었지만 이제껏 몰랐던 사실을 들으니 무언가 골똘해진 얼굴을 식당을 나오기까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문헌정보학을 공부하신 어머니는 현재 사서교사로 근무하고 계신다. 전공을 살려 직업을 선택한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잘 풀어낸 인생이라 말할 수도 있다. 지금의 어머니 모습이 원하던 바를 이룬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한때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직업을 꿈꾸셨다니. 30년을 함께 살았지만 아들이란 여전히 어머니의 많은 걸 알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제서야 떠오른 어제 아침 일화가 있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고 화면을 보니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한 행사에 본인의 소회를 밝힐 수 있는 연예인을 초청하고 싶은데 알아봐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연예를 출입했기에 이것쯤이야 어렵지 않지만 전화를 받을 당시 난 "다른 행사 때 그를 초청한 주최 측에 연락해보는 게 빠르지 않겠나"고 말한 바 있다. 참 못난 대답이었다.


자연스럽게 곱씹게 된 과거도 있다. 어머니는 별 것 아닌 내 일상의 업무도 자세히 물으시며 알려고 하셨다. 그렇게 습득하신 정보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꼭 전하셨다. 한번은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아들이 ㅇㅇ기자다'고 소개를 해주시는데 민망함에 손사레를 친 기억이 있다. 꽤나 민망한 일인데 일하는 자식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신 당신의 표현 방법이셨다. 오늘 아침의 문의도 말이다.


언젠가 한번 어머니가 "가난해서 우리는 못했는데 자식에겐 그렇게 기회를 뺏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각종 이유로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던 유년시절 아쉬움을 자식에게 되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날 키우신 것이었다.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희생에 가까운 지원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특히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 금전적으로 참 많은 소비가 있었는데 '넓은 세상에서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기회'라고 천명하시며 물심양면 힘을 더하셨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


그런 내용을 편지에 봤다 정도를 알려준 동생은 여전히 바쁘게 밥을 먹고 있었다. 이같은 짧은 생각을 하던 난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머니가 문의한 연예인이 소속된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행사 담당자 연락처를 전달 받았고 관련 정보를 취득해 어머니에게 넘겨드렸다. 수백만원에 이르는 섭외비를 들은 어머니는 '헉'하고 놀라셨다. 이렇게 결말을 맞이한 아침 일화였다.


연애 상대인 아버지에게 언급했을 정도면 아주 소중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냥 한번쯤 생각해본 의미없는 꿈이었다면 스스로 삼키고 흘려보내지 않았을까. 그랬던 꿈을 자식들에게 의도적으로 투영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아들과 딸이 그 직업을 갖고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 묻고 싶다. 또 아주 오래 전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여겼을 젊은 시절 어머니는 소망하던 바를 왜 포기하셨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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