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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ug 13. 2023

꼭 잘할 필요는 없는데

하루를 바쁘게 살다 보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멋진 하늘을 포착할 기회를 얻기 힘들 때가 많다. Paul 제공

얼마 전 하루 연차를 사용해 모교에 다녀온 바 있다. 한동안 세차게 내렸던 비로 인해 날씨가 선선했고 캠퍼스를 한적하게 거닐기에 충분했다. 방학이 한창이라 학생들이 없는줄 알았는데 웬걸 단과대학 곳곳에는 꽤 많은 인적이 보였다. 특히 도서관에는 학기와 다름없는 분위기를 뿜어내며 적잖은 학생들이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런 후배들을 보며 나와 함께 동행한 이가 "대학생의 모습이 엿보인다"는 말을 했다. 20대 초반 젊음이 얼굴에 가득함과 동시에 취업으로 불안한 마음도 표정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찰나의 순간에 그게 읽혔냐"고 되물었다. 동시에 내가 학부시절 어땠는지를 떠올리게 됐다.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아 털어버릴 수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이랬다. 취업이 너무나도 힘든 요즘 그래도 원하는 분야에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감사냐고. 학교를 다니면서 단과대 게시판에 붙어있는 각종 대외활동과 채용 공고 포스터를 볼때마다 마음을 졸였었다. 이 모든 걸 아주 멋드러지게 해낼 자신도 없었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가득했었다.


취업을 하면 이 모든 걱정과 고민이 사라질 것이라 착각했었다. 하지만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사회는 날카롭게 철저했다. 당장 내가 최근 회사로 들어갔을 때 겪은 일화를 소개하겠다. 퇴근 무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데 제작부서가 모여있는 층에 한 직원이 탑승했다. 그 직원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선배를 발견했고 이내 고개를 숙였다.


후배의 인사를 받은 선배는 "잘하고 있냐"는 상투적인 인사를 던졌다. 그러자 그 후배는 열중 쉬어 자세를 취하더니 열심히 하고 있다는 답을 내놨다. 하루 종일 현장을 돌아다닌 탓인지 땀 냄새를 강하게 풍기던 그 선배는 "나도 열심히 하고 너도 그렇고 그건 아무나 다 할 수 있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야 한단 말이야"고 덧붙였다.


우리가 장난스럽게 주고 받는 이 말을 현실에서 오랜만에 직접 들으니 순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후배로 보이는 그 직원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것 같은 매우 앳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에 온 것일 텐데 이런 말을 면전에서 듣다니. 아마도 그 후배의 퇴근길은 어떻게 잘해낼 수 있을까 부담감으로 가득찬 발걸음이 꽤 무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중에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면 나도 후배에게 똑같이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싶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어느 후배에게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기도 한 것 같다. 왜 우리는 열심히 하겠다는 이에게 무조건적인 용기를 그냥 전해줄 수는 없는 걸까. 누구나 내뱉을 수 있는 말이라도 하루 종일 업무 두려움에 치였을 그 후배에겐 큰 위로가 됐을 텐데.


연차 때 모교에서 마주쳤던 이름 모를 후배도 어느 누구에게 동일한 말을 들은 적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세상에 인정받을 수 있는 건실한 회사에 취업해야 성공적인 대학생활이라는 부담 말이다. 지금 보내고 있는 순간은 딱 한번 뿐이라는 걸 어른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전에 지나서 후회하지 말고 하고픈 일들로 가득 채우기에도 부족하다는 응원을 건넬 수 있는 자격이 된 어른이 나인지는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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