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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ug 17. 2023

선배가 건넸던 말없는 위로

식당이 마감할 때까지 손님은 일찍 자리를 뜬 한팀을 제외하면 선배와 나 둘뿐이었고 단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Paul 제공

회사 당직 근무를 마치고 오후 6시가 좀 넘어 퇴근을 하려던 참이었다. 저 멀리서 한 선배가 들어오는 걸 목격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쫓아가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선배는 "저녁에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밥이나 먹자"고 하셨다. 그렇게 약 30분 뒤 예정에 없던 식사를 진행하게 됐다.


이 선배는 고기를 좋아하시기에 당연히 회사 앞에 있는 고기집을 가겠거니 생각했다. 물론 내 예상이 빗나가지는 않았다. 그 식당을 가려면 신호등을 건너야했는데 수분간 기다리던 참에 선배는 "더우니 다른 걸 먹자"고 하셨다. 그리고 신호등 옆에 있는 한 횟집에 들어가게 됐다. 단 둘이 식사를 하는 것이니 그리 늦은 시간까지 있지 않겠다 싶었다.


식당에 들어가 회를 한접시 주문했고 선배는 곧장 "맥주랑 소주도 달라"고 말하셨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를 배려해 콜라도 주문해주셨다. 앞서 언급했듯 꽤 오랜만에 마주했던 것이기에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소소하게 나눔을 이어갔다. 사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기자 두명이서 할 수 있는, 어떻게 취재를 해왔고 향후 갈 현장이 있는지 등 타인이 들으면 재미없을 주제들이 전부였다.


선배와 난 다른 부서에 있기 때문에 서로의 생사를 기사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는 대뜸 "내가 안 볼 것 같지만 쓴 기사들 다 보고 있다"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다른 회사로 갈 생각이 아직은 없는거냐고 물으셨다. 진짜 이직할 마음이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작업(?)을 진행하지 않나. 난 곧바로 "없다"고 답했다. 선배가 건넨 질문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기자를 계속 할 마음이 있는지를 물으는 것이었다.


잠깐 설명하자면 몇달전 기획회의가 처음 시작됐을 때 적잖은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데일리 이슈가 아닌 기획 보도를 위한 취재를 해야 했기에 그랬다. 기껏 먼 현장까지 갔는데 시간을 쓴 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허탕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한동안 킬(Kill)을 위한 발제를 올리기도 했다. 부담감을 마음에서 애써 지우려고 했던 시도였다.


그런데 최근 기획회의 때 내 모습을 보면 그 순간을 피하지 않고 좀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유인 즉슨 어차피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좋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박수받을 그런 기획을 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열심히 취재했다 정도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20년 이상의 고년차 선배는 당연히 이 마음을 알고 계셨다. 기사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선배는 "포털에 픽(Pick)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기자가 그 이슈를 열심히 뜯어봤고 결국 기사로 출고됐다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니까"라고 덧붙이셨다. 이어 "기자란 그런 거잖아"라고도 하셨다. 맥락없는 말이라고 여길 수 있겠으나 선배이기 전에 동료로서 힘과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자리를 파하고 식당을 나오니 밤 11시가 넘어있었다. 그렇지만 선배와 난 식당 앞에서 20여분간 더 대화를 나눴다. 원래 이날은 구내식당에서 카레를 저녁으로 먹은 뒤 새똥 맞은 차를 세차시키고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계획이었다. 예정했던 일정이 모두 틀어졌으니 실패한 날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얻어낸 이 직업, 좀 더 힘을 내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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