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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ug 21. 2023

난 누군가의 기쁨이었다

아버지 회사로 가는 길 위 하늘은 끝없이 높고 화창했다. Paul 제공

무더운 여름 오전이었다. 전날부터 취재를 위해 지하철역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사방이 트인 밖도 습한 공기 탓에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데 하물며 지하 깊숙한 역들은 불쾌지수를 상승시키기 딱 좋은 상태였다. 목이 말랐지만 아직 내용이 완벽히 나오지 못했던 터라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취재가 가능한 장소를 계속 돌아다녔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라는 걸 지하철역 주변 상가들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알아차렸다. 시계를 보니 그마저도 훌쩍 지나 1시를 가까이 가리키고 있었다. 기사를 어떻게 작성할지 데스크와 몇분간 통화로 정리는 됐으니 빨리 끼니를 챙겨야 했다. 마감이 급했기에 메뉴 선택에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붐비지 않는 식당으로 곧장 들어가 밥을 해치웠다.


문제는 마감을 어디서 할 것인가였다. 지하철역이 대형 백화점과 연결된 곳이었기에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모두 자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적한 공간을 멀리 찾아나서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문득 역에서 가까운 아버지 회사가 떠올랐다. 점심 미팅이 있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전화를 걸어 여쭤보니 미팅은 끝이 났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버지는 회사로 오라고 하셨고 그렇게 내게 마감이 가능한 공간이 생기게 됐다.


아버지 회사에 도착해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에는 어딘가 익숙한 남성이 이를 닦고 계셨다. 다름 아닌 아버지 동료였다. 꾸벅 인사를 드리니 "내가 기억이 나냐"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이어"언론사에서 일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라고 물으셨고 난 회사를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감사하네. 아버지의 기쁨이 되어서"라는 말을 건네셨다.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종종 들으니 멋쩍게 웃어 넘겼다. 그리곧 아버지 사무실로 들어가 마감을 진행했다. 아무리 머릿속에 기사 방향을 생각했다 해도 취재 내용을 정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퍽퍽 쉬었다. 이를 본 아버지는 "왜 그렇게 한숨을 쉬냐. 잘 안풀리는 게 있냐"고 몇번이나 물으셨다. 내겐 그저 추임새 같은 것인데 아버지는 아들의 한숨에 걱정이 되셨나보다.


어쨌든 마감은 완료했고 저녁 약속을 가기 위해 아버지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후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대뜸 "아버지가 회사에서 본 네 얼굴이 많이 상했다고 하더라"고 말하셨다. 이에 난 하루 종일 공기도 통하지 않는 지하철을 돌아다녔으니 그렇다고 답했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곧장 방으로 들어와 큰 거울 앞에서 얼굴을 이리저리 들춰봤다. 정말로 그런가 싶어서.


이내 아까 들었던, 아버지의 기쁨이 됐다는 말이 떠올랐다. 약 2년 전 사다드린 회사 열쇠고리를 자동차 키에 여전히 달고 다니시는 아버지셨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시는 당신께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방법인 셈이었다. 그런 아들이 일하며 내쉬는 한숨에 왜 그런가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못하시고 어머니에게 걱정을 나누셨던 것이었다. 그랬다. 나는 아버지의 그리고 어머니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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