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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ug 24. 2023

아이들 미래를 봐달라던 어느 부탁

지난해 따라갔던 중등부 수련회에서 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게 그저 좋았다. Paul 제공

최근 중고등학생들의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친구들 간 학교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사건들을 취재하다 보면 정말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케이스가 적잖기 때문이다.


몇달전에도 학폭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폭력의 정도는 다소 약했으나 경찰에 넘겨지기 충분한 케이스였다. 내가 이곳에 글을 쓰는 건 기억에 남는 사건을 취재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담당 경찰서 형사과장과 통화한 내용이 인상에 남아서다.


보통 기자들은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면 팩트만 확인받길 원한다. 이때문에 바쁜(척) 기자들은 곧바로 질문 폭격을 날린다. 나도 이날 좀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었고 교육청 추가 취재를 위해 빨리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 날 형사과장이 붙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전해줬다. 혹시 가해 학생들 혐의를 정확하게 쓰지 않아줄 수 있냐고.


불현듯 내 데스크가 떠올랐다. 법조 출신이었던 데스크는 사건사고 기사에서 혐의가 정확히 기재돼 있지 않으면 기사를 반려시키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난 형사과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형사과장은 "아무리 가해 학생들이라도 미래가 있는 아이들 아닌가. 어떤 계기로 변화할 수도 있으니 그런다"고 말해줬다. 꼭 좀 잘 부탁한다는 말도 형사과장은 덧붙였다.


형사과장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를 경험하는지 우리는 가늠할 수 없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의 사건과 그런 일을 저지른 악랄한 범죄자를 숱하게 봤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기자들보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형사과장에게서 이런 말을 듣다니. 가해 학생들이란 점은 둘째고 피도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이같은 부탁을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사실 당시에는 마감으로 바빠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하루 동안, 또 이후에도 일을 하며 비슷한 취재를 할 떄마다 간곡한 어조로 부탁하던 형사과장의 말이 계속 떠올랐었다. 그리고 오늘 이 일화를 다시 곱씹으며 곰곰히 생각해봤다.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말은 이것이었다. 우리에겐, 나에겐 그럴 자격이 있을까.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죽이려는 군중들을 향해 "죄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고 말하셨다. 이 말의 원론적인 의미를 배제하고 생각하면 우리네 삶을 되짚어볼 때 완전히 떳떳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에 도달하지 않았을 뿐이지 속으로만 감춰야 했던 여러가지가 있지 않냐는 거다. 나쁨의 정도를 가늠하고 싶겠으나 사실 그걸 가늠하는 것조차 인간이 만든 규율 안에서 하지 않나. 나는 저들과 다르다며 구분짓고 싶겠지만 따지고 보면 한 끗 차이란 말이다.


요즘 TV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학생들이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학폭을 일삼는 모습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꼭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어른들이 마치 '쉽게 그래도 된다' 정도의 분위기를 암암리에 조장했다 볼 수 있지 않나. 그걸 따라하는 게 바보라고 한다면 아이들은 원래 그런 특성이 있다는 걸 몰랐단 말인가로 되물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앞서 언급했던 형사과장의 말은 꽤나 무겁고도 책임감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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