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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Sep 04. 2023

이틀 전 당첨된 출장

해외갔는데 관광을 못했다는 아이돌 말을 비로소 믿을 수 있는 출장이었다. Paul 제공

지난 화요일 회사로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휴대전화가 울렸고 화면을 보니 데스크로부터 카톡이 들어와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 열어봐도 되지만 이른 아침부터 카톡을 보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출고한 기획 기사의 후속 취재를 지시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회사에 도착해 곧바로 관련 정보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취합한 정보를 선배에게 보고하니 날라온 회신은 “이틀 뒤 다녀와라”였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출장이 잡혔다. 꽤나 여유로운 하루를 보낼 참이었는데 목요일에 예정된 약속을 취소하기부터 출장에 필요한 잡다한 업무 처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장 당일이 밝아왔고 나는 오전 7시를 좀 넘겨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집합 예정시간을 약 30여분 남겨두고서 말이다. 긴장을 한 탓에 전날 잠을 설쳐 퍽 피곤하기도 했지만 이런 감성 따위에 젖어들 여유는 없었다. 이번 출장에 동행했던 동료들은 20년차 선배 3명이었기 때문이다.


선배 1명과 짧게 보내는 점심식사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3명과 함께 저멀리 제주도 출장을 떠나다니. 이런 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 지인은 “임원과 일주일간 미국 출장을 다녀와봤냐”라는 무서운 회포를 건네기도 했다.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이드에 운전기사까지 하게 된 막내 기자의 걱정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사실 선배들은 이런 내 모습을 살펴볼 겨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공항에서도, 차안에서도 끊임없이 취재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직업을 갖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숙명의 모습인 셈이었다. 어쩌면 내게 관심을 돌리지 못하도록 차라리 바쁜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뒤로 하고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상황이 있기 1시간 전이었다. 여유롭게 점검 사안들에 대해 둘러볼 참이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상황이 시작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간 시간을 두고 현장에 도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티는 안냈지만 계획 밖 흐름에 좀 당황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뒤로한 채 선배들은 일사분란하게 취재를 시작했다. 당시 취재에 필요한 정보를 단톡을 만들어 공유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공유된 모든 정보들을 숙지한듯 보였다.


20년 이상의 고년차 선배들의 면모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단톡에 공유된 정보들 이외에 필요한 것들을 추가로 취합해 취재에 사용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바쁜 현장 가운데 같은 매체 소속으로 이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면서 자랑스럽기도 했다.


덕분에 3시간 넘게 이어진 상황을 잘 대비해 취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드라마틱한 돌발 이슈가 없는 것도 다행이었다. 여담이지만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해오길 잘했다 싶기도 했다. 이날 현장은 2곳이었는데 사이 간격이 꽤 넓어 몇번이고 뛰어다녀야했기 때문이다.


마무리된 현장을 정리한 뒤 선배들과 빠른 저녁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길이었다. 취재가 시작되기 전 별다른 말이 없었던 선배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신세대 음악을 들으며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갖고 있던 긴장을 비로소 내려놓았던 것이다. 특별하지 않지만 이들이 프로라는 걸 실감하게 됐던 순간이었다.


출장이야 직장인이라면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다만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걸 이번 출장을 통해 느꼈다. 원하는 일을 해서 감사한데 그 일을 비교적 더 다채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감사 아니겠나 싶었다. 주어진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스스로 토닥일 수 있음에 뿌듯함을 곱씹어본다. 물론 또 출장이 잡히면 한숨을 퍽퍽 쉬며 궁시렁거릴 게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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