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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Sep 11. 2023

나만의 도쿄를 찾아봤다

9월임에도 도쿄의 오전은 뜨거웠다. Paul 제공

올해 처음 휴가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동안 쉬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일주일 내내 긴 연휴를 보낸 적은 없었다. 마음속으로 목적지를 정하진 않았지만 무조건 해외를 가야겠다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 기간이 다가오자 망설여지기도 했다. 올해에만 이미 두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게 이유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되는데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야 할까 고민이 깊어졌었다.


이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측근은 까짓거 다녀오라는 용기를 전해줬다. 어떤 모양이든 가치있기 마련인데 마음가는 대로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이 내겐 큰 위로가 됐고 실제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올해 세번째 해외여행인 일본 도쿄 방문을 확정하게 됐다.


애초에 난 가만히 쉬는 걸 하지 못한다. 단기간에 무언가의 성과를 이뤄내야 한다는 대학시절과 직장생활의 압박감이 이같은 습성을 만들었다. 이번 일본행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그런 일정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날 지켜보던 측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존 일상을 벗어나 그들의 일상으로 간 자체가 여행이다"는 현명한 답변을 던져줬다.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대중교통보다 무작정 걷기를 택했다. Paul 제공

그래도 알찬 2박3일을 보내기 위해 나름의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도쿄 공항에 도착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급행을 탔어야 했는데 내가 내린 터미널에선 탑승 가능한 급행 열차가 없었다. 순간 당황함이 몰려왔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역무원과 일어가 잔뜩 써진 노선표를 마주하며 정신이 더 아득해졌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도심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던 측근은 여행인데 왜 시간에 구애를 받나며 정해진 스케줄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줬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보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휴대전화로 담기 시작했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에 내게 꼭 필요했던 처방전과 다름없는 귀중한 조언이었다.

거리에 붐비는 사람들을 보며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Paul 제공

예상을 빗나간 일은 많았다. 도쿄도청 전망대 휴무일인 화요일에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고 도청을 방문했다. 덕분에 관광객들이 잘 모르는 어떤 높은 건물로 찾아가 전망을 볼 수 있었다. 맛이 좋기로 소문난 텐동집을 찾았더니 저녁 예약은 꽉 찼다는 말을 들었고 다음날 오픈런을 해봤다. 그랬더니 가게 문 앞엔 '오늘은 쉰다'는 안내 문구가 있었다. 목적지까지 거리가 애매한 곳들은 도보를 택했는데 인천공항에 주차된 내 차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거짓말처럼 3일은 금방 지나갔고 다시 현실로 복귀해 제보 메일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돌아오기 싫을 정도로 도쿄를 느끼고 오라는 말에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갸우뚱했었다. 그런데 곱씹어보면 공항을 떠나는 순간에, 그리고 오늘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별다른 것 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나만의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아서일까. 유튜브를 접속하면 우후죽순으로 추천되는 도쿄 관련 영상도 한몫하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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