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도쿄를 다녀왔다. 지난해 9월에 이어 꽤나 빠르게 다시 방문한 것이어서 모든 게 익숙했다. 바뀐 점이 있다면 매우 더운 날씨에서 두터운 외투를 걸치지 않으면 되지 않는 날씨로 바뀌었다는 것일 뿐. 가기 전날 회식이 늦게 마친 탓에 잠을 자는둥 마는둥 설치고 새벽 3시에 집을 나와 아주 이른 비행기를 타고 넘어갔기에 비몽사몽함도 숨기지 못했다. 어쨌든 일상을 벗어나 여행객이란 특별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었다.
그 와중에 가는 곳곳마다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 간 장벽이 무너졌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듯 방문한 곳들의 직원 중 한명은 꼭 중동계였다. 지난번에도 그랬었나 기억을 되짚어 봤더니 방문하는 편의점마다 직원들 대부분이 중동계였음을 복기하게 됐다. 새삼 놀라왔던 건 이들은 일본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이 점이 흥미로워 거리를 거닐며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회사로 출근하는 듯한 직장인들의 다수는 정년을 앞둔 나이인 것 같았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이들은 쉽사리 찾아볼 수 없었다. 자율 복장 출근이라면 할말은 없지만 내가 마주쳤던 젊은이들은 회사로 향하는 것 같진 않았다.
이 모습을 뚫어져라 보다가 재빨리 기사를 찾아보니 일본은 최근 정년을 70세까지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킨 상태였다. 법안 통과 이전에 정년을 끝낸 이들을 재고용하는 회사가 73%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100세 시대에 60세는 한창이니 그들 입장에선 감사할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일을 할 수 있는 젊은이가 없으니 고육지책인 셈이었다. 최근 다큐로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 일본 청년에 관한 내용을 접한 바 있는데 앞서 언급한 우려가 추측이 아닌 사실로 증명되는 것 아닌가.
왜 일을 할 수 있는 젊은이가 없을까. 정년을 앞둔 시니어들이 도무지 은퇴를 하지 않으니 자리가 없어 취업을 하지 못해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줄곧 이어지는 경제 불황 속 기업들이 어려움을 토해내며 신규 고용을 하지 않는 걸까. 어떤 상황이든 시니어의 재고용률이 확연히 높고 법안을 바꿔가며 정년을 늘리는 데에는 젊은이의 부재가 한가지 원인으로 작용함은 분명했다.
사회가 점차 늙어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됐던 여행이었다. 해당 문제는 비단 일본만의 것이 아님을 우리 또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젊은이가 사라지는 건 가혹한 취업시장 때문도,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출생률 때문도 아닐 수 있다.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젊은이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결여된 목적성에 박탈감을 느끼고 이탈을 이어가고 있기에 그렇다. 정답이라고 여겨졌던 틀에 박힌 단계가 내재된 사회가 더 이상 동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로 갈음할 수 있다.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절대 꺾이지 않는 목적을 내 손에 쥐었나 천천히 곱씹는단 말이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은 집단이 허수라면 결코 나는 아니라 부정하는 이면 가운데 매우 부합한 조건들로 가득찼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에 비춰지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하기 시작하면서가 조건을 이루는 발단이 됐을지도. 시간은 흘러 나이 들어감은 같을 텐데 난 어떤 모습으로 걷고 있을까 뭉뚱그려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