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유튜브를 보게 됐다. 유명한 제작사에서 퇴사한 PD가 자신만의 채널을 개설한 것이었다. 웃프게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PD는 영상을 찍는 내내 완벽한 방송 기법(?)을 보여줬다. 자신이 말하거나 이동할 땐 완벽한 구도를 찾아 찍었고 무언가 반드시 담아야 할 사건이 생기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켰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땐 TV에서 익숙한 구도로 카메라를 세팅한 다음 PD 답게 영상에 쓰일만한 질문을 잇따라 던졌다.
이 PD가 퇴사한 이유는 이랬다. 휴가는 맡은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 한 달이었고 그 시간이 지나면 곧장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PD가 해야 할 여러 업무들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하늘을 보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고 했다. 조그마한 골방 안에 갇혀서 화면과 편집기만 바라봐야 했던 거다. 어느날 문득 생각이 더 깊어졌고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이 PD의 시작은 프리랜서였다. 이후 계약직을 거쳐 내로라하는 제작사의 PD가 됐다. 말이 쉽지 퇴사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더욱이 이 한국에서 대기업을 벗어난다는 건 아주 힘든 고난길을 자처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러니 많은 이가 갖가지 이유로 차오르는 힘듦과 고통을 감내하며 한숨으로 퇴사 욕구를 갈음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PD는 그런 것들을 뒤로 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선택했다.
이후 PD는 평소 가보고 싶던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영상을 보고 있자니 하루에도 열댓번씩 퇴사를 입에 오르내리고 사는 내게 이유 모를 평온함과 부러움을 전해줬다. 하물며 그와 동료였던 PD들은 어떨까 싶었다. 저 자유로움을 따라가고 싶다라고 생각하다가도 현실을 자각한 뒤 '어떻게 들어왔는데. 그냥 좀 버티자'라며 마음을 쓸어내릴 수도 있겠지. 회사 밖은, 정확히는 대기업 울타리를 넘어서면 전쟁터니까.
시대가 아무리 학력과 틀에 박힌 직장생활이 없이도 돈을 월등히 잘 벌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간다고 해도 여긴 한국이지 않은가. 분명 똑똑하고 높은 곳에 있으신 양반들이 유튜브란 꿀단지를 모를리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일까. 바꿔 말하면 이 PD의 삶이 당장 눈에 좋아보여도 매일 파라다이스가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얼마 가지 않아 선택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난 그냥 그 PD의 생각이 부러웠다. 우리가 늘 재밌게 보는 영상들은 결국 이들의 밤샘과 치열한 열정과 노력 끝에 나오는 결과물들인데, 이를 위해 밤낮없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창문도 없는 편집실에 틀어박혀 있어야지 않나. 기자와 마찬가지로 사람 만나기 어렵고 평범한 삶을 추구할 수 없는(정확히는 추구하면 안 되는) 출연자를 위한 '들러리' 아닌가. 저마다 가진 가치에 따라 다르겠으나 결국 주인공은 아닌 셈인데, 프로그램 말미에 본인과 가족들 이외에 잘 보지 않는 자막에 이름 한줄 들어가는 것으로 그동안의 수고를 갈음하기엔 한번 뿐인 청춘이 퍽 아깝다는 결론이 그를 움직인 거다.
요즘 내 미래는 어떨까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직업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별 생각 없이 살아가단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똑같은 모습 그대로일 것 같아서 그렇다. 그럼 반대로 도대체 '안 그런 삶'은 뭔가 다시 고민해보게 된다. 괴짜스럽지만 진로를 고민하던 학부시절부터 여태껏 이 생각에 대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책들로만 보던 현자들을 만나 멱살을 잡고 묻고 싶은 심정이 굴뚝이다.
PD가 다 말하진 않았겠지만 마음을 움직이게 됐던 무언가의 계기가 있을 거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그게 다야?' 싶을 수도 있겠으나 내 인생 오롯이 나의 몫인데 눈치 보지 않고 과감히 나설 수 있던 그 원동력은 훗날 담대했지만 꽤 잘한 '뻘짓'이었다 돌아볼 수 있지 않겠나. 문득 호주 어학연수 시절을 떠올리게 됐다. 그땐 정말 아무런 고민 없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실천과 결심을 이루어 냈는데. 이젠 그러고 있지 못한다는 아쉬움 보다도 정말 시간이 순식간이구나 싶어 좀 서글퍼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