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떡볶이집에서 건네받은 평온

by Paul
KakaoTalk_20250925_223953752.jpg 떡볶이는 참 달았는데 그게 당시엔 일품이었다. Paul 제공

지난주 3일간 시간이 나서 제주도에 다녀왔다. 비행기를 탈 때 정말 오랜만에 국외선이 아닌 국내선을 탄 것이었다. 가기 직전까지도 잇따라 몰아치는 업무에 많이 지쳤었다. 당장에라도 어디론가 떠나야겠단 그런 마음이 굴뚝같이 들었는데 그 도피처가 제주였던 거다.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면 참 좋고 위안이 될 것 같았다.


3일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가 무색하게 매우 화창한 날이 이어졌다. 서울은 날씨가 추워 긴팔도 여러개 챙겼는데 머쓱해진 상황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요란하게 울려대는 카톡 알람을 끄고 내 맘대로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꼭두새벽부터 잠도 별로 자지 못하고 집에서 나와 비행기를 타고 제주까지, 눈을 뜨고 있는 게 신기하다 싶었으나 맛좋은 아이스 커피 한잔을 마시니 기분이 퍽 나아지기도 했다.


3일이 꽤나 길게 지나갈줄 알았는데 시간 참 순식간이었다. 좀 여유롭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가방에 넣어간 노트북으로 시간이 나면 열심히 두드렸다. 가만히 잠자코 있지 못하는 성격이 쉼을 허락하지 못한 거다. 이틀밤 연속으로 맛이 좋다는 치킨을 사먹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특별할 것 없는 맛이긴 했는데 일상과 다른 장소가 선사하는 감칠맛이 이틀을 먹어도 물리지 않도록 해줬나 싶기도 했다.


마지막 날이었다. 제주에 갔으면 그곳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먹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조식을 거하게 먹은 뒤 배가 별로 고프자 않아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때였다. 검색을 해보니 여행객들이 잇따라 방문하던 곳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가게 위치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바닷가 앞에 있었다. 작고 아담한 가게에 할머니 2명이 꾸려가고 있었다.


손님도 없는데 맛이 좋을까 의아해하며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무언가에 머리를 크게 맞은듯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게 됐다. 창밖으로는 가게 앞으로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햇볕이 쨍쩅해 아주 멀리 보진 못했지만 넋을 놓고 하염없이 보기에 충분한 가시거리였다. 아무도 듣지 않을 것 같은 라디오가 배경음악이 됐고 가게 사장님과 친한 어떤 동네 주민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며 어디론가 시끄럽게 통화를 하기도 했다. 떡볶이가 준비되는지 주방 집기들 소리가 달그락거렸고.


순간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서 입아프게 흘러나오는 골치아픈 이야기들을 잘 알고 계실까 싶었다. 이들이 그런 것들을 모른다고 해 무식하다고 핀잔을 주려는 게 아니다. 그런 삶은 어떨까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다 모르겠고 여유롭겠다, 행복하겠다 이런 결론을 혼자 입밖으로 곱씹어보기도 했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애써 진을 빼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내 걱정과는 달리 떡볶이는 맛이 좋았다. 수원에 단골 떡볶이 가게가 있었는데 그집과 얼추 비슷한 맛이 났다. 사장님은 "덥진 않죠?"라고 물어봐주기도 하셨다. 해가 화사한데 바닷바람이 불어오니 에어컨은 틀지 않아도 됐었다. 갑자기 찾은 곳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만났던 행운이었다. 다시 제주에 오면 이곳을 방문할까 싶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한적한 기분을 만들어줬던 이 떡볶이를 기억하고 싶어졌다.


떡볶이집을 뒤로 하고 몇시간의 일정을 소화한 뒤 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다. 이따금씩 단체대화방을 열어보곤 했었는데 이젠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다시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지기도 했다. 여행이 종료된다는 아쉬움 보단, 뿌리나케 도망쳤던 현실을 제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웃펐다. 휴가를 마치고 즐겁게 돌아갈 수 있는 일터를 가진 이가 있을까 싶었다. 현실을 살아내는 모두 엇비슷하겠는데 '모두가 다 그래'라는 체념은 언제부터 누가 정당화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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