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일을 해야 할까 싶어서

by Paul
IMG_6236.jpeg 요즘 하늘을 올려다 보면 그 평화로움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Paul 제공

어느날 한 단체 대화방 알람이 울렸다. 인사발령으로 흩어진 옛 팀방이었다. 팀이라고 해봤자 3명인데, 팀을 이끌었던 선배가 톡을 보낸 것이었다. 선배는 꽤나 담담한 말투로 소식을 전했다. 회사를 그만둘 것 같다는 거였다. 다른 곳에 이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그냥 일을 그만두려한다고 했다. 선배는 더이상 어떤 말들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에게 제일 먼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는 말은 덧붙여줬다.


선배랑 팀을 하면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한 건 나였다. 그럴 때마다 선배는 '나도 그만두고 싶다'고 했지만 그 뉘앙스는 우스갯 소리였다. 물론 진심은 본인 밖에 모르지만 그래도 느낌이란 게 있지 않나. 일도 누구보다 잘하고 후배들에게 닮고 싶은 선배로 여겨지는 그가 그만둔다는 소식은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언젠가 내가 글에 적었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따르고 좋아하는 선배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는 것 말이다. 이번이 N번째가 되는 거다.


선배가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을까 생각해봤다. 다른 선배에게 전해들은 말로는 왜 기자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단다. 선배는 연차가 꽤 높다. 단독 보도는 물론이고 업계에서 이뤄낸 게 많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기자다. 그런데 수습을 막 뗀 후배가 할법한 고민을 토로하다니. 누군가는 왜 이제 와서 뒤늦게 이런 말을 하나 싶을 수 있지만 난 이 고민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기자의 일상이 연차가 어떻든 이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디든 안 힘든 곳이 있겠나. 남의 돈 버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하는데 업무의 어려움을 객관적으로 따져볼 순 없다. 기자들의 이야기니 우리의 삶을 좀 살펴보자. 근로계약서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가 업무시간이라고 적혀있지만 이건 글자에 불과하다. 아침보고는 오전 8시부터 시작이고 만약 가야할 현장이 있다면 새벽 5시든 6시든 가야 한다. 퇴근시간은 일단 저녁 6시는 한창 일하는 시간이다. 기자생활 하면서 그 전에 혹은 6시 즈음에 퇴근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내가 출입하는 나와바리에 일이 터지면 그게 언제든, 평일 밤이든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가야 한다. 당직자가 있다고 하면 적어도 출입기자가 발생 경위와 흐름을 업데이트해줘야 한다. 기자들끼리 하는 말로 우린 서로에게 전화를 걸때 신호음이 3번을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한다. 지시 문자를 받는다면 적어도 1분 안에 곧바로 답장을 해야 한다. 통화가 곧바로 되지 않거나 문자에 5분 이상 답장하지 않는다면 사고로 여긴다.


이런 걸 떠나, 세상만사 모든 이야기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사는 건 그리 유쾌하진 않다. 멀리서 봤을 때, 언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참 멋있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사는 건 꽤 어렵다. 나와 상관은 없는데 어쩔 수 없이 그 면면을 들춰봐야 하지 않나. 그냥 들춰보는가? 작은 꼬투리 하나라도 끄집어내어 누군가를 잘 공격할 수 있어야 좋은 기자가 되는 법이다.


설마 진짜 그러겠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기자라고 보면 된다. 몇일전 선배를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보도국에 있는 기자들 다 데리고 정신과를 간다면 한명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진단은 나와 질병 휴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농담삼아 넘겼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부장을 하고 있거나 그에 가까운 연차를 가진 선배들은 사회를 보는 시선이 괴물에 가깝다. 날카로움이 절대 얕봐선 안 되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그렇다.


기자생활을 한지도 5년이 넘은 내가 매일 이런 고민을 앉고 사는 게 좀 유별난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높은 연차의 선배도 같은 고민으로 일을 그만둘 결심을 하다니.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무디거나 혹은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일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의 원인이 모두 같구나란 위로를 좀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 누군가 엄지를 치켜세워줄 직업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여겨지나. 얇디 얇은 그 명함 하나 갖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여념없이 내달리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 참 간사해서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다. 말로는 어떤 것이든 다 할 수 있지만 막상 그래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미련없이 행동하는 건 어렵다. 숱한 고민을 해온 나조차도 똑같다. 더이상은 못할 것 같은데 이 손에 쥔 걸 놓으면 언제 다시 쌓아올려질까, 혹은 이것과 견줄 만한 어떤 걸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다. 그러다보면 '그래도 지금이 낫지' 싶어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고 힘들지만 꾹 참고 내일을 기다리고 오늘을 버티며 살아가는 거다.


사직서를 던져버리는 게 답이 아니다. 고민이 된다고 해서 옷장에 다른 옷을 꺼내어 바꿔입듯 직장이나 하고 있는 일을 가벼이 여기면 된다는 것도 아니다. 기자를 예로 들었고 나와 선배의 고민을 나눴지만 이와 엇비슷한 힘듦을 짊어지고 오늘을 보내는 이들이 있을 테니. '별 거 아니다'란 말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길게 늘어진 대열에서 이탈한 적이 없어서 어색할 뿐인데 삶의 주체는 우리다.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선배의 연락이 왔을 때 내가 했던 이 말을 나도 기억해야 하고 당신들도 유념해야 한다. 어쨌든 행복해야 하고 그것은, 그렇게 만들어가는 시작은 별 것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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