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영수증 필요 없다 말한 하루

by Paul
KakaoTalk_20251013_144505826.jpg 슬라임을 완성해보겠다며 끙끙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감사했다. Paul 제공

요즘 여행을 가는 지역에 있는 공부방을 찾는다. 거창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 보단 그저 간식을 싸들고 가서 아이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공부방 센터장님으로부터 작은 강연 요청을 받으면 나는 학생 때 어떻게 꿈을 꾸고 이루어 갔는지 여정을 나누기도 한다. 내가 대단해서 이런 직장인이 됐다가 야마가 아니라 나는 정말 평범했는데 원하는 걸 쫓아 구체적인 실천을 만들었다를 요점으로 한다.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썩 특별하진 않다. 매일 밤 짝궁과 '우리가 가진 것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달라' 기도를 한다. 기도만 해선 실천을 만들지 못할 것 같아 올해 어린이날 첫번째 실행을 옮겨봤다. 몇몇 동료들을 모아 기부(?)를 받았고 레고와 헤드셋 등 선물을 잔뜩 사들고 공부방을 찾았었다. 별 것 아니지만 아이들 눈엔 설레고 기뻤던 마음이 그대로 보였다.


한번 시작이 어렵지 두번은 쉽지 않은가. 모든 일이 그렇다. 그때 이후로 지방에 여행을 가면 공부방을 찾아 연락한 뒤 방문하고 있다. 그래봐야 아직 간 곳은 손에 꼽는다. 그래도 실천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얼마 전 다녀온 해외 여행에서도 선교지를 방문해 선물을 주고 왔다. 우리의 목적은 꽤나 분명했다. 여유가 있으니 일회성 기부를 한다는 게 아니라, 너희들도 이런 나눔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취지를 전하는 것. 말은 하지 않지만 선물을 전해주며 이 마음을 담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보육원 이야기를 전해듣게 됐다. 19살 친구가 상황을 비관해 자꾸 좋지 못한 선택을 하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 계속 그 생각이 났고 보육원 담당자 연락처를 공유받아 연락했다. 공부방을 방문해오던 취지를 설명한 뒤 괜찮다면 추석 연휴를 맞아 간식을 싸들고 가도 되겠냐고 전했다. 원래 보육원 방문은 꽤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직업이 특별해서인지(?) 아니면 신뢰가 갈 만한 분을 통해 연결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흔쾌히 그래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방문하기로 한 날 보육원으로 갔더니 간단한 현황 소개를 받았다. 나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보육원에 온 아이들이 가장 많을 줄 알았는데 학대 가정에서 보호를 받게 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후 아이들을 만났는데 아까 받았던 소개 내용이 얼굴들을 마주하면서 떠올랐다.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에게 그렇게 못된 짓을 한 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이 참 씁쓸했다. 불쌍하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누구보다 귀하게 성장해 본인들의 무언가를 이뤄나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 마음을 먹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다. 물론 아이들 중에는 나와 25년 세대차이가 나는 친구도 있었지만 무색할 만큼 발랄하게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내가 그들과 놀아준 게 아니라 아저씨와 놀아드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보육원 일정을 고려해 1시간 반 정도 머무르려고 했는데 세시간이 훌쩍 지났었다. 감사하게도 모인 아이들과 잘 융화된 것이다.


자리가 마무리 될 무렵 보육원 과장님이 내게 슬쩍 다가오셨다. 가져왔던 선물에 대한 기부금 영수증이 필요하시면 작성해 준다는 거였다. 그동안 누가 어떤 목적으로 보육원에 왔는진 모르겠지만, 또 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면 혜택이니 방문 취지가 무색해지는 건 아니었다. 난 한사코 "괜찮다" 말씀드렸다. 금액을 떠나 그냥 짝궁과 내가 생각했을 때 금액의 어떤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로선 우리의 취지를 지키고 싶은 결정이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고 전부 주차장으로 내려가 배꼽 인사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보육원을 나오면서 짝궁과 오랜 시간, 아니 그날 하루 동안은 가졌던 시간에 대해 곱씹고 곱씹었다. 무엇보다 사회공헌의 본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보육원 현황 소개 때 많은 현실을 전해들었는데 단순히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기보단 정책의 변화와 기관의 실천 등 근본적 해결이 선행돼야 했다.


고민들이 필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기로 다시 다짐했다. 이런 방문과 시간들이 눈에 띄는 무언가의 결과물을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 밑 빠진 독에 불붓기가 분명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돈을 사용하는 건 오늘날 세상에서 아깝고 미련한 것이라 여겨지니까 말이다. 최근에 휴대전화를 바꿨는데 휴대전화를 바꾸니 케이스가 필요하고 그에 걸맞는 여러 기기들도 눈에 들어온다. 욕심은 끝이 없고 손에 쥐려고 하는 것 또한 완전한 결말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부족하지 않다면 좀 흘려보내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걸 정말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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