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버스를 탔던 오후

by Paul
점심시간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타니 아무도 없었는데 이런 고요함은 참 어색하면서도 평온한 기분을 줬다. Paul 제공

회사에 들어갔다가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보도국으로 올라가 쉬려고 했다. 커피를 한잔 사려고 했는데 문득 시간도 남았겠다 곧바로 회사로 들어가는 건 좀 아쉽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에 교통카드를 챙겨 버스를 타러 갔다. 멀리 다녀오진 못하지만 근처로 짧은 나들이 정도는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직장인에게 허락된 조그마한 일탈쯤으로 정의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타려니 어떤 걸 타야 하나 헷갈렸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한 버스가 들어왔는데 대충 눈대중으로 흘겨보니 원하는 목적지가 적혀 있었고 곧장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넷플릭스를 켜 시청하기 시작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상하게도 버스는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였다. 이상했지만 노선표를 보니 어느 방향에서 타든 목적지로 가는 걸로 나와 안심했었다.


그런데 차에 남아있던 마지막 승객이 내린 뒤 기사는 내게 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래서 답을 했더니 내가 잘못 탔단다. 창밖을 보니 웬걸 버스가 가득한 차고지 앞이었다. 다행히 차고지 앞에서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 기사는 그걸 타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약 20분 가량 지났었는데 순간 고민했다.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싶어서. 이왕 나온 거 일단 가자 싶었고 몇분을 기다려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목적지를 기사에게 물어보고 타게 된 버스엔 아무도 타지 않았었다. 직장인이 가득한 지역이니 누가 버스를 탈까 싶었다. 이날은 날이 추워 두터운 점퍼를 입었는데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니 더워졌다. 창문을 여니 쌀쌀한 바람이 들어왔고 그게 내 마음을 안정시켜줬다. 어쨌든 가기로 했으니까 평온하게 나들이를 마쳐보자 마음 먹었다.


회사 인근을 벗어나니 사람들이 한둘씩 타기 시작했고 목적지에 다다를 때 쯤엔 버스가 만원이 됐다. 북적이는 버스에서 내려 거리를 걸었다. 자주가던 카페에서 음료를 한잔 사서 다시 돌아갈 참이었다. 최근 한국으로 놀러오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했는데 역시나 거리엔 외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놀기에 적당한 날씨였고 여유로운 그들의 모습이 퍽 부러웠다.


카페에서 음료를 포장한 뒤 다시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단 한정거장이면 도착하니 금세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겠지만 끝나는 점심시간은 참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냥 이대로 퇴근하면 얼마나 좋을까 일어나지도 않을 상상을 막 해보기도 했다. 신호등 앞에서 멀리 회사의 모습이 보이는데 마치 어둡고 침침한 굴(?)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랄까.


회사 정문 게이트를 지나며 바보 같은 도전이었지만 해냈다 싶어 이상한 뿌듯함이 마음 가득했다. 회사 인근 지역은 N년차 다니면서 버스를 잘못타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실수를 한 것 아닌가. 당연해보여도 그렇지 않은 일을 겪으며 어쩌면 당연한 건 없다 싶기도 했다. 멋쩍은 깨달음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이다.


이 마저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회사로 올라갔으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가만히 있었다면 무던히 쉴 수 있었겠지만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더 많은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쨌든 나가서 뭐라도 하니 일련의 환기가 오후 시간대를 그나마 더 무던히 보낼 수 있는 힘을 줬던 게 아니었을까. 점심시간도 일의 연속인 우리들에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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