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던 직장 내 괴롭힘

by Paul
아침마다 대중교통에서 분주한 직장인들은 출근이란 동일한 목적을 공유한다. Paul 제공

부서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선배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괴롭힘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이미 나갔던 기사인데 제목만 바꿔서 다시 쓰라고 하거나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을 작성하라고 지시를 했다. 혹 내가 그 연락을 단번에 받지 못하면 단체대화방이 아닌 개인 채팅으로 연락했고, 그마저도 곧장 답이 없으면 전화를 했다. 미처 받지 못하면 부재중이 한번에 6개도 넘게 찍혀 있었다.


전화 내용은 이랬다. 말을 듣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좋게 마무리되지 않는 경우다 많다거나 넌 별로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등이었다. 그 내용에 질문을 하면 협조하지 않는 거냐며 위계를 사용하려고 했다. 물론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이 모든 통화 내용을 온전히 귀로 듣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저 멀리 떨어뜨려두긴 했지만 내 마음은 참 힘들었다.


언론사는 자고로 상명하복을 조직의 숙명으로 여긴다. 시키면 무조건 까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반발을 하는 게 기자로서 미덕을 지키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여태껏 부장이나 선배들의 지시를 어기거나 따르지 않은 적이 없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은 정상적으로 상명하복을 이뤄낼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그야말로 괴롭힘이라는 거다.


명색이 언론사인데 이런 부당함을 알리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한다며 관련 기사를 줄곧 쏟아내지만 정작 본인들은 바뀌지 않는 곳이 바로 언론사다. 대부분의 회사와 똑같다는 거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선후배들이 이같은 비슷한 일을 당할 때마다 서로 모여 험한말을 주고 받지만 딱히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거다.


이 선배는 우리 회사 내 최고참이다. 그런 경력을 가진 이가 고작 N년차에 접어든 후배와 싸울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는 회사 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해 직급 없이 승진을 하지 못한 선배다. 모두가 함께 일하기 싫어하는데 이유는 내가 당한 사례들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철이면 이것만큼은 피해가자 싶은 요소로 꼽히는데 불행히도 이번엔 내가 타깃이 된 거다.


그래서 요즘 매일매일 출근하는 게 참 괴롭다. 도망이라도 갈 수 있다면 그럴 텐데 딱히 그럴 수 있을 만한 곳도 없다. 어디에라도 털어놓고 싶지만 부모님에게 귀뜸을 해봤자 걱정 밖에 더 하시겠나. 혼자서 이겨내야지 마음을 다잡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괴로움을 견디는 것도 한계가 존재한다는 걸 느껴가고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 동기와 이야기를 나눴다. 동기는 자신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사례를 언급하며 정 버틸 수 없다면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병원을 가서 말끔히 나아질 수 있는 거라면 당장에라도 달려갔다. 그런데 현실은 여전히 그 선배와 일을 해야 하니 원인이 바뀌지 않으면 힘듦도 연속성을 갖게 되는 거다. 동기와 함께 한숨을 주고 받았다.


몇년전 아버지 회사의 한 고위급 인사가 아버지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는 듯한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기자 아들은 씩씩거리며 참지 않은 바 있다. 절대 가만히 있지 말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내 도움을 받으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런데 정작 내게 벌어진 일은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없고 혼자서 끙끙거리고 있으니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하는 것과 같나 싶다.


왜 직장을 다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남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가니 그 대열에 튀고 싶지 않아 대학을 갔고 무사히 졸업장을 땄다. 대학 다음은 당연히 취업이라고 하니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해 원하는 직장을 얻어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은 게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의 행복이었다. 무언갈 이룬다는 목적은 있었지만 그 가운데 가치 있는 진정한 행복은 뒷전이었던 거다.


삶의 목표가 돈이라면 이런 것 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며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나. 진정 그것만이 이유라면 굳이 대기업이나 전문직을 할 필요가 있나. 리스크가 커도 사업을 아주 크게 벌여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도 있는데 말이다.


최후의 수단이 이직이 될 수 있겠으나 그에 앞서 지혜를 발휘할 무언가가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하며 거울을 봤는데 내 모습이 참 보잘 것 없이 초췌해 보였다. 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가 아닌 일을 위해 하루를 온전히 쏟은 것에 따른 결과구나 싶었다. 또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앞으로 어느 곳에 있든 그런 선배는 절대 되지 말아야지 깊은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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