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2
꽤 피곤한 하루였다.
이런 날이면 자다가 가위에 눌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은 생각난 김에 귀신을 본 경험을 하나 말해야겠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아직은 뭐 공부나 진학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던 때라고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엄마는 여름방학 때만 되면 나를 부산의 외할머니 댁으로 데리고 가셨는데, 아직도 그때 탔었던 무궁화호나 새마을호의 냄새가 기억난다. 항상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거의 5시간 정도 걸려서 부산까지 갔었다. 그리고, 플랫폼에서 어머니가 사주시는 홍익회 가락국수와 차내에서 사 먹는 구운 달걀과 사이다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외할머니 댁은 부산 000동의 산복도로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집들이 산 중턱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그런지, 작은 골목이 아주 많았다.
당시 외할머니가 살고 계셨던 집은 일층 단독주택이었는데, 부산의 여느 90년대의 단독주택처럼 큰 마루가 있었고, 마루의 문을 열면 앞의 작은 마당이 있었다. 그리고, 마당의 한 구석에는 화단이 벽을 따라서 대문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마당의 중앙에는 수도꼭지가 있었고, 큰 대야에 항상 물을 받아서 등목을 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은 사촌들과 이모들, 이모부들이 모두 바다로 놀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모두들 들떠서 왁자지껄 떠들며, 밥을 빨리 먹고 해수욕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더랬다. 나도 들뜬 마음을 가지고 준비를 하려는데, 왠지 배가 너무 아팠다.
큰 이모와 큰 이모부는 시내에서 정육점을 하고 계셨는데, 매일 팔고 남은 고기들을 잔뜩 집으로 가져오셨다. 그래서, 방학 때 외할머니댁에 가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바로 고기를 잔뜩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탈이 안 나던 고기였지만, 그날 아침은 바닷가에 간다는 이유로 너무 들떠서 빨리 먹다가 덜컥 체하고 만 것이었다.
나는 사촌들과 함께 바닷가에 가고 싶어서 괜찮다고 했지만, 배가 너무 아파서 간 화장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바람에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외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닷가로 떠나버린 상황이었다. 나는 너무 분해서 내 배를 때리면서 울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머니의 동네에서 해운대까지는 꽤 먼 거리였기 때문에, 나는 어린 마음에 할머니에게 짜증을 부렸지만, 이내 혼자 무엇을 하고 놀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배는 아팠고, 체한 것이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손을 따주셨고, (손을 딸 때도 엄청 아팠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할머니께서는 당시 내가 엄청난 엄살을 부렸다고 하셨다 ㅎㅎㅎ) 이제 손가락까지 아파진 나는 위장약을 먹고 시원한 마루에서 힘이 다 빠진 채로 그냥 쉴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다리를 배고 선풍기의 바람을 맞으며 마루에서 잠을 자다가 잠시 정신이 든 순간, 몽롱한 가운데서 화단 옆의 벽에 세워져 있는 짧은 몽당 빗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 빗자루는 평소에도 할머니가 자주 마당을 청소하실 때 사용하시는 빗자루였다.
그래서 그냥 '빗자루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 찰나, 그 빗자루가 조금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열린 마루의 문을 통하여 여름날 오후의 쨍한 햇살이 비추고 있어서 눈을 완벽하게 다 뜨지는 못했지만, 그 빗자루는 분명 내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누운 자세로 그 몽당 빗자루를 쳐다보며,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 보았다.
내가 머리의 왼쪽을 할머니의 다리에 붙이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오른쪽(윗방향)으로 조금 돌리면, 그 빗자루의 키가 커지고, 왼쪽으로 돌리면, 다시 작아지는 식이었다.
원래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던 그 빗자루는 이제 내 눈앞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꼭 춤추는 것 같아서 재미있게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나의 목이 한없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고, 그 몽당 빗자루는 한없이 키가 커져가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입이 벌어지지 않았고, 할머니가 바로 옆에 계셨지만 나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계속 돌아가는 것은 못 보셨는지 그냥 가만히 계셨다.
마침내 내 고개가 돌아가다 못해 몸까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제야 할머니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급하게 내 뺨을 내리치셨다.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었지만, 내 목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고,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놀라시면서, 어디가 아픈지를 계속 물어보셨고, 나는 방금 내가 겪은 일을 설명드렸다.
그제야 할머니는 조금 웃으시면서, 내가 체한 것 때문에 몸이 갑자기 약해져서 몽당빗자루 귀신에게 가위를 눌린 것이라고 말해 주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빗자루를 잡아다가 바깥 화장실 옆 창고에 감금하셨다.
그날 밤 나는 해수욕을 마치고 돌아온 사촌들에게 내가 낮에 경험한 몽당 귀신 이야기를 사촌들에게 해주었고, 모두들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어느 집에서도 그렇게 짧은 몽당 빗자루를 볼 수 없지만, 여름과 귀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바로 그 빗자루이다.
#몽당귀신
#빗자루귀신
#귀신이야기
#가위눌림
#체함
Q: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가위에 눌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