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
누구나 남에게는 없는 자신만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의 이런 이야기를 전혀 모를 것이다. 내가 최대한 나의 이야기를 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소에 나의 밝은 모습만을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뒷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나의 중학교 때의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나는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되고 나서부터 외할머니댁으로 전학을 가서 사촌들과 학교를 다녔다. 물론,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학교를 옮기게 된 것은 아니고, 아버지의 유학과 어머니의 암 선고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한 달간의 짧은 유학생활을 뒤로하고 휴학 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셨고, 그때부터 어머니와 약 일 년간의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도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흔히, 중학교 2학년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서서히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하며, 신체의 변화를 경험하고,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짧게나마 생각해 보는 시기이다. 사춘기인 것이다.
처음 전학생으로 인사를 하고 나서 며칠 동안은 반 친구들 중에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내 옆에 앉은 짝만 이것저것 조금씩 학교에 대한 것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는데, 당시 내가 전학을 간 그 반은 2학년 중에서도 마침 공부를 잘하는 반 중에 하나였고, 다들 서울에서 전학을 온 나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원래 다니던 서울의 중학교에서 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이미 유학이 결정 난 상태로 중학교 졸업장만 잘 받으면 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이런 사정(?)을 내 짝에게 말한 지 반나절만에 내 옆에서 나를 유심히 보던 한 친구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남자 애들이 무슨 경계심이... ㅎㅎㅎ
나중에 알고 보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친구는 그 반에서 언제나 2등을 하는 아이였다.
만화에서만 보던 그런 전학생과 재학생들의 우정, 부산 사나이의 의리... 뭐 이런 것들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막상 그렇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씁쓸했다고 할까? 역시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뭐, 그렇게 안면을 트고(?) 조금씩 적응해 나가면서, 말이 통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있던 중에 드디어 내가 학급의 당번을 맡게 된 주가 다가왔다.
당시, 다른 학교에서처럼 새로운 학교의 당번제도 역시 매우 심플했다. 아침에 다른 학생들보다 30분 정도 일찍 등교해서 칠판을 깨끗하게 닦고, 교무실에서 분필을 새것으로 가져다 놓고, 칠판지우개를 깨끗하게 털어놓는 것으로 당번으로서의 일과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것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큰 노란색 주전자에 정수기의 물을 담아 오는 것이었다.
그때는 가을이 되면 교실 한 복판에 둥그렇고 큰 기름난로를 놓아두었고, 그 위에 물이 가득 담긴 노란색 주전자를 데워서 전 학급이 따뜻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하는 것이 당번의 주요 임무였던 것이었다.
전학을 가서 처음 당번을 그날은 일주일 수업을 시작하는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무실에서 당번을 상징하는 노란 명찰을 가져다가 교복 가슴에 달았다.
당번에게는 월요일 아침이 조금 특별했는데, 왜냐하면, 월요일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서 실시하는 조례에 당번들은 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여유롭게 교실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을 마쳐놓고, 주전자를 들고, 정수기가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당시, 학교에는 정수기가 2대 있었는데, 모두 지하에 있는 매점 안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2학년이었던 나는 큰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서 지하 1층에서부터 지상 2층까지 들고 올라가야 했다. 뭐.. 조례에 빠질 수만 있다면 뭐를 하라고 해도 좋았다.
매점에서 물을 가득 담아서 두 손에 들고 낑낑거리며 1층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쪽으로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마침 내가 올라가야 하는 계단에서 덩치가 나의 두 배 정도 되는 한 거인(?)이 내려와 내 쪽으로 복도를 따라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한눈에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 사람은 당시에 우리 학교에서 매우 악명 높은 체육선생님이었던, 일명 '가물치' 선생님이었다.
내가 전학을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체육시간이 되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내 짝이 나에게 한 가지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학교의 체육 선생님들에 대한 경고였다. 물론, 그 선생님들의 무시무시한 몇 가지의 활약(?)들도 간단하게 예로 들면서 나에게 말해 주었다.
이 학교에는 체육선생님이 세 분 있었는데, 모두 다 전 국가대표, 또는 전 국대 상비군 출신이었다. 그중에서 유일한 여자 선생님은 전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 선생님이었고, 별명은 '독사'로 그 세 선생님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서 대장격이었다. 나머지 두 분의 선생님들은 모두 남자였는데, 각각 전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일명 '가물치', 전 배드민턴 국가대표 일명 '메기'였다. 이러한 별명이 붙게 된 것은 각각의 엄청난(?) 이유가 있었는데, 자세하게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언행이 모두 다소 폭력적이고 과격하다는 것이었다.(참고로, 그 선생님들에 대한 비하의도는 없으며, 단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 적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때 큰 물주전자를 들고 복도를 걸어오고 있을 때, 나의 맞은편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던 체육 선생님은 다름 아닌 키 190cm의 가물치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 160cm 초반 정도였습니다)
1990년대에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녔던 분들이라면 당시의 학교규율이 매우 엄격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전의 학교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아주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나는 당시 15세의 나이에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는 매우 철저한 원칙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스승에 대한 예의범절에 관한 것이었다. 복도에서는 아무리 학생이 친구와 이야기를 조용히 하고 있더라도 맞은편에 선생님의 그림자라도 보이면 몸을 단정히 하고, 발소리를 낮추며, 매우 천천히 예의 있게 걸어야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오면, 반드시 걸음을 멈추고, 90도로 몸을 굽혀 인사를 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아~ 그리고, "다, 나, 까"를 사용해서 문장을 말해야 했다.
나는 인사를 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최대한 공손하게 보이려고 주전자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꼭 잡은 채로 나의 배 쪽에 가깝게 붙이고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내가 당번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노란색 당번 명찰이 붙어 있는 가슴을 최대한 앞으로 내밀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가물치 선생님과의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체육시간에 한 팔로 불량스럽게 행동하거나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들을 저 멀리 던져버리는 그 악명 높은(?) 선생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 나의 입에서 나온 인사말은 아마도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가장 미스터리 한 일로 남아있다.
가물치 선생님과 다섯 발자국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큰 목소리로; 하지만 부드럽고 적당한 톤으로, 웃으면서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가물치 선생님!!!"
그다음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190cm의 그 거구의 전 국가대표 아저씨는 내 반가운(?) 인사를 듣자마자 나의 뺨을 후려갈겼고, 그 선생님의 즉결심판에 나는 그대로 나가떨어져서 개교이래 처음으로 지하 1층 복도를 날아서 횡단한 학생이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내가 왜 그런 말로 인사했는지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가물치 선생님에 대하여 내 머릿속에 각인된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마치 나를 작동불능의 로봇으로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대하여 지금까지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당번으로써 끝까지 그 물 주전자를 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무력(?) 앞에 나 스스로를 굽히지 않았다. 나는 당당히 모두가 두려워하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전교생을 대신하여 속 시원하게 그의 별명을 외친 것이었다.
나의 이런 활약이 다른 학생들에게 퍼진 이후로 나는 그 누구도 감히 부를 수 없었던 체육 선생님들의 별명을 그중 한 분의 코 앞에서 크게 외친 독립투사(?)로써 한동안 학교의 스타가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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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러분은 중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