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씨가 LA 지역을 찾아 콘서트를 했다. 추억 속 그녀가 떠오른다
S양이 "백지영 콘서트 보러갈래요?"라고 묻는다. 생각도 하지 않고 "네"라고 답을 했다. 사실 난 백지영 씨를 그렇게 좋아하는 왕팬은 아니다. 그러나 LA에 오는 한국 가수들은 일단 가서 만나야 한다. 가수라서가 아니다. 힘든 이민 광야를 걷다보면 종종 목이 마를 때가 있다. 난 그들이 정말 성능 좋은 수분 공급원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가수들이 부쩍 LA 지역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이곳에는 1년에 한번, 헐리우드 볼에서 열리는 조금 규모가 큰 케이팝 콘서트가 있다. 아이돌부터 시작해서 출연진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그런데 나도 이제 늙었는지..., 소위 아이돌이라는 가수가 나와도 그게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나에게 아이돌은 '소녀시대' 이후로 멈춘 느낌.
그런 큰 행사와는 별도로, LA 지역 외곽에 자리한 카지노 리조트를 중심으로 몇년전부터 한국 가수들의 공연이 심심찮게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공연을 여는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내가 중고등학교, 또는 이른 대학생 시절에 한창 주가를 올리시는 분들이 많다. 물론 여전히 그 분들의 노래는 사랑하고 즐긴다. 그런데 한편으로 "아직도 활동하시네?"라는 의문도 든다. 10대에 소리지르며 길보드 챠트 테이프를 사 듣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분들을 보면 "지금 근데 나이가 몇이야?"라는 궁금증도 든다. 노래는 좋지만 가서 꼭 봐야할 정도인가? 싶은게 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그런 약간은 아니꼬운 시각은 정말 180도로 바뀌었다.
동갑내기 친구 E양은 정말 한국 가수 공연 마니아다. LA 지역을 찾는 가수들의 정보도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프로모션으로 나오는 표가 없는지 정말 집요하게 찾아다닌다. 어느날 "야 룰라 온데!" E양이 다급하게 나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어쩌라는 걸까..." E양은 빨리 표를 구해야 한다며 나를 다그쳤다. 난 E양에게 "난 그런데 안가. 야 그분들 춤은 추시냐? 체리나가 지금 몇살이냐?"라고 비꼬듯 답했다. 그러나 결국 E양에게 끌려 난 한국에서도 가본 적 없는 룰라 콘서트를 찾게 되었다.
당시 그 콘서트는 심지어 컨츄리꼬꼬가 함께했다. 룰라와 컨츄리꼬꼬. 물론 구성원들 중 일부는 방송인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가수로서는 사실상 은퇴하신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분들이 와서 공연을 한다? 사실 시작부터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연장이 꽉차고, 그들의 전성기를 나처럼 10대가 아닌 30대에 즐기셨던 분들도 찾아왔다. LA 지역 한국 가수 콘서트의 관객은 정말 다양한 계층을 자랑한다. 콘서트 장이 LA에서 보통 2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게 있기에, 교통 문제 등으로 가족단위 방문도 참 많다. 가족들 모두 와서 콘서트를 보고, 카지노 리조트에서 하루 쉬고 가는 그런 모습들. 여하튼, 공연이 시작되고 룰라 멤버들이 나왔다.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김지현 씨는 놀랍게도 여전히 섹시했다.
힘든 이민 생활 속 잊고 지내던 10대의 추억
한국 가수들 노래 들으며 떠올리는 달콤함
E양은 한손에 맥주를 들고 시작부터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가 무척 어색한 나는 계속 엉덩이를 의자에 고정하려 했으나, 전후좌우를 봐도 모두가 다 일어나서 춤을 추고 노래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그냥 앉아있기는 무색해 나도 일어나서 소리를 지리고 어느새 박자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룰라와 컨츄리꼬꼬 음악에 취해 몸을 맡기고 있자니 참 별의별 추억이 다 스쳐 지나간다. 중학교때 소풍가서 장기자랑 시간에 난 분명 룰라를 불렀고,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모두 그들의 음악과 함께 추억을 보냈다. 룰라 노래를 들으며 여자친구와 떠난 여행지도 떠올랐고, 첫차를 사고 컨츄리꼬꼬 음악을 신나게 틀고 동해안으로 떠났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런 추억들 하나하나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뭔가 목마른 갈증을 식혀주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래..., 이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 목말라했던 그런 것들이 나의 10대와 20대를 함께 보내고 즐겼던 문화를 통해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난 몸을 더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이후로 난 정말 한국 가수들이 LA를 온다면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왕팬이됐다. 공연의 수준과 가수의 근황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을 만나고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내가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과 만나는 그런 달콤함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김종국 씨는 여전히 멋있었고, 박정현 씨의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있는 목소리는 직접 들어봐야 진가를 알 수 있었다.
댄스 가수였던 백지영 씨는 최근 애정한 발라드를 부르는 드라마OST계의 거장이 됐다. 백지영 씨 콘서트장에서 그녀의 육성으로 드라마 <아이리스>OST '잊지 말아요'를 듣고 있자니, 당시 함께 웃고 행복했던 이의 모습도 떠오른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촉촉함. 백지영의 목소리는 해가 가고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애절한 무엇이 깊어지는 것 같다.
다음에 또 누가 LA를 찾을까? 누가 오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찾아갈 나는, 더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노래를 해주길 바란다. 나처럼 그들의 노래를 10대와 20대에 걸쳐 즐겼던 사람도 있고, 30대와 40대에 그들의 노래를 즐겼던 이들은 이제 중년 이상의 나이가 됐다. 나이와 환경은 다르지만 콘서트에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들 이민자라는 것. 이 힘든 이민 광야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추억에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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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Paul H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