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빠르고 유연하게 성장한 비결을 담은 '규칙 없음' 독서 후기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홀로 존재한다면 개인 마음대로 무엇을 하던 상관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는 그렇지 않다.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서로의 의견이 달라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고 지켜야 할 규칙이 만들어졌다. 모든 나라에는 법이라는 이름의 규칙이 존재한다. 이익을 내기 위해 만들어진 영리 집단, 회사도 그렇다. 사규 또는 사칙이 존재한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원들을 효율·효과적으로 관리하여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규칙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과연 규칙 없는 회사도 있을까? 혹시 있다면 그런 회사는 과연 모습일까?
규칙이 없는 회사 ‘넷플릭스’의 조직문화를 다룬 책 '규칙 없음(No Rules Rules)'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회사를 최고의 인재들로만 유지하고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도입한 다음, 통제를 제거해 직원들이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이 ‘규칙 없음’의 방법이 모든 넷플릭스의 성장 비결을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넷플릭스를 굉장히 빠르고 유연한 기업으로 만든 것은 사실이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
1. 인재 밀도 극대화
2. 조직 내 솔직성 극대화
3. 통제 제거
인재 밀도의 극대화는 제대로 일을 못하는 사람을 자르고 최고들만 고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최고의 인재들 사이에서 최고의 효과와 효율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훌륭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직원을 해고하고, 최고의 전문성과 협동력을 가진 직원들로 회사를 채우기 시작했다.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탁월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회사는 당연히 잘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조금은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영입하기 위해 최고 수준으로 대우해주는 것은 어렵겠지.
인재 밀도가 구축된 후에는 사람들끼리 솔직하고 투명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서로의 신뢰가 보장된 상태에서 업무효율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회사 내의 중요한 정보들을 공개하자 구성원들은 회사에 더 큰 소속감과 애착을 느끼게 되었고, 구성원 간의 건강한 피드백이 오갈 수 있도록 하자 서로의 단점들을 보완해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회사가 직원들을 확실하게 믿어줄 때다. 기존 회사들이 가지고 있던 규정과 절차(Rules and Process, R&P)를 제거하고 자유와 책임(Freedom and Responsibility, F&R)을 부여한다. 직원들에게 '넷플릭스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해라'라는 일종의 도덕과 같은 느낌적 느낌의 원칙을 따르도록 한다. 실무 전문가가 회사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큰 맥락을 제시해주었다. 통제와 규정은, 무능력한 직원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며 효율성과 책임감을 동시에 높이도록 했다.
바로 이 3단계가 이 책 내용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 프로세스를 통해 규칙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단순할수록 실천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실제로 이 방법을 따라 할 수 있는 회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이다. 이 여정과 함께 하면서 개인적으로 몇 가지 드는 생각들이 있어 정리해보았다.
넷플릭스의 조직문화는 법과 도덕 사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은 타율적이고 강제적으로 꼭 지켜야 하는 것이고, 도덕은 자율적으로 양심에 따라 지키면 좋은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 둘의 장점을 교묘하게 섞어서 저 멀리 있는 규칙을 보이지 않게 만든 것 같았다. 규칙이 있지만 보이지 않아 규칙이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신기루 마법이랄까? 법처럼 뚜렷하게 강제성을 가진 규칙으로 명문화시키지 않고 자율적으로 양심에 따라 지키게끔 하였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애매한 규칙 없음’ 말이다. ‘애매한 규칙 없음’이다 보니 뛰어난 사람들만이 그 ‘규칙 없음’의 세계에서 있는 보이지 않는 규칙을 찾아 살아남을 수 있는 거겠지.
'규칙을 지켜!'라고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거부감을 가지고 통제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같은 청개구리 스타일은 아마도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넷플릭스는 맥락을 제시하는 교육 방식을 구성원들에게 적용하였다. 보이지 않는 규칙을 지킬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놓았는데, 그것은 바로 맥락이라는 절묘한 수이다.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든 참고할 수 있는 상황적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규칙이 없지만 일종의 규칙을 지키게 되는 가이드라인을 정리하고, 리더부터 솔선수범하여 구성원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넷플릭스의 ‘규칙 없음’의 세계뿐만 아니라, 규칙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도 그 규칙을 잘 따르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뿐만 아니라 수많은 조직, 심지어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교육할 때 ‘이건 안돼, 저건 안돼’를 무조건 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왜 안 되는 건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지,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솔선수범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 책은 넷플릭스의 CEO 혼자서 쓴 글이 아니다. 넷플릭스의 현 CEO 리드 헤이스팅스와 기업 문화 전문가 에린 마이어 교수가 대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실무자가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연구자가 그 현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비평하고 검증하는 형식이다. 책을 읽으면서 리드의 생각과 회사 구성원들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도 생각했는데, 책 곳곳에 담긴 넷플릭스 내부 직원들의 인터뷰 내용이 그 생각을 상쇄시켰다. 이런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임직원들의 신남과 행복함도 꿀잼 포인트였고 부러운 마음도 살짝 들었다. 결과적으로 굉장히 주관적인 회사 경영자의 이야기를 객관적인 외부자의 입장에서 에린 마이어 교수가 의견을 가미하여 풀어내었던 것이 내가 이 책을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전반적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에 놓인 개인적인 찝찝함 들도 있었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환경과도 엮어서 생각하다 보니 든 생각이었다.
‘우리 아이를 이렇게 잘 키웠어요. 이렇게 키웠더니 제대로 성장했네요.’ 느낌이랄까? 굉장히 제한된 경우의 수로 엮어진 환경에서 수많은 좋은 결정과 우연적 필연들의 집합체가 이렇게 성공적인 결과를 내었다. 사후에 다시 살펴보니 이런 법칙과 프로세스로 성공의 비결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내용 말이다. 이대로만 매뉴얼대로 적용시킨다면 다른 회사도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매뉴얼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마도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읽으면 좋은 책을 아이의 입장에서 읽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조직의 리더 또는 인사 담당자, 조직문화 담당자가 읽을 경우, 보다 현실에 적용하고 반영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을 텐데, 내가 이 책을 읽고 회사에 적용하거나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는 생각에 약간은 답답함을 느꼈다. 언젠가 내가 조직의 리더가 된다면 다시 읽어보고 싶은 내용들이다. 회사의 리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까지 해보게 되었다. 나 자신을 3단계에 적용해 본다면? 나 자신을 하나의 기업체라고 생각해보고 인사이드 아웃처럼 내 안에 있는 작은 나의 인재 밀도를 높인다면?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대하는 태도를 가지고 자기 객관화가 잘 된다면? 그러면 내가 나만의 규칙과 통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이런 재미있는 상상도 해본다.
넷플릭스가 시도한 방법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적용 가능할까? 한국 같은 수직적 조직 구조에서 상사에게 피드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해도 인재 밀도의 극대화 없는 피드백은 분명 생각만큼 건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글로벌 화가 된 기업 시장에서 인재 밀도를 넷플릭스만큼 키우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고용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 상 성과에 따라 바로 퇴사를 시키는 것도 아마 어려울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하지 않는 이상 스타트업도 인재 밀도를 한계치 이상 높이기 쉽지 않을 것이고, 규모가 큰 대기업의 경우에는 최고 권력자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세 단계 중 한 단계도 넘어서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 엄청난 대규모 수술이 필요하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댈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질문해본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부터 규칙이 있는 공동체가 있었을까? 규칙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공동체라면 규칙이 생겼을까? 결국 수많은 조직들이 규칙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규칙이 필요 없는 세상’의 모습을 따라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규칙 없는 회사는 잘 돌아갈까? 적어도 넷플릭스는 잘 돌아간다. 아직까지는. 이상적인 모습을 동경한 넷플릭스는 규칙을 보이지 않게끔 많은 노력을 했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굉장한 성장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 기업이 이상적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길, 더 많은 규칙 없는 또는 다양하게 재미있는 시도를 하는 회사가 생기길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회사가 나타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