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엔 전초 증상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미리 깨달을 수도, 돌이켜 알아 후회할 수도 있다. 운 좋게 전자에 속한다 해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후자보다 더 나쁜 경우라 할 수 있다. 성서에서도 말하듯, 알고 지은 죄가 모르고 지은 죄보다 큰 것은 자연법의 원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장관들, 위기를 사적 기회로 삼으려는 차관과 윤정학, 피 흘리는 자의 주머니를 터는 강자들, 폭탄 앞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덜고자 달음질하는 한시현 팀장, 그리고 후자에 속한 갑수와 다수의 단역들.
이것은 선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에서 이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그 자리에 앉힌 것, 그들이 망치도록 방치한 것은 누구의 책임으로 귀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재정국 차관이 한 팀장에게 말하듯, 아무리 지혜롭고 유능한 사람이어도 시스템 앞에 무력할 뿐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바뀌는 것이 없다. 이처럼 시스템은 영웅마저 뭉게 버린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시스템이기에 순교자나 마녀를 찾는 무의미한 연극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그것은 의심과 관심과 공부와 전략 그리고 합리적인 투표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다. 책임자를 찾아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지는 것은 이 시스템 속 블랙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 그 끝의 암막 앞에 더 이상 의미 없는 종이 티켓만 남겨진 손으로 자리를 비켜야 한다. 그 상황 속에서 웃는 자는 결국 그 공연의 기획자와 투자자들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