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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May 26. 2019

영화_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Sicario

 유능한 FBI 요원 케이트는 카르텔 조직을 추격하고 있었다. 잡았다 싶을 때마다 헛물을 켜던 상황에 지쳤던 케이트는 급기야 작전 현장에서 폭탄이 터지게 된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의문의 사나이 맷을 만나게 된다. 그는 FBI 국장보다 높은 곳에서 보냄 받은 사람이었다. 이제는 이 사건의 끝을 보고 싶었던 케이트는 찜찜한 감정을 뒤로한 채 그를 따라나서게 된다.

 그러나 그와 함께하는 현장들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공의와 정의로 수사해 온 케이트는 목격한 상황 앞에 분노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케이트는 영화 내내 맷과 사냥개 알레한드로에게 끌려다닌다.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좌절과 무능을 경험할 뿐, 케이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았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총구 앞에 벌벌 떨며 거짓 진술을 하는 것뿐이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여성 캐릭터를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무능하게 묘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이 영화를 봤을 때 그녀의 무능함 속에 절대 꺾이지 않는 신념과 좌절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희망-정의를 향한-을 보았다. 감독은 이 무능한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 영화를 끌고 나가면서 그것들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르의 영화는 냉혈한 알레한드로와 악을 처단하기 위해 냉철하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맷과 같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빌런 캐릭터를 구축하여 이 둘의 대립 구도로 극에 박진감을 더하는 식으로 연출한다. 하지만 '시카리오'는 다르다. 제목과 다르게 이 영화가 주목하는 주인공은 '시카리오'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카리오'들 속에서 휘둘리고 희생당하는 선(善)이었다.

 케이트는 선과 정의, 평화, 희망 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미 늑대 소굴이 되어버린 이 사회에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끝까지 악을 향해 총을 겨두는 모습이 케이트인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이 선한 것들의 여신이 된다. 그래서 악이 되어버린 알레한드로도 그녀를 보며 한 때는 자신에게 있었던 선(善)을 생각하게 된다.

 또 한 편으로 엑스트라에 불과한 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의 역할은 영화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함에도 감독은 구태여 그의 가족을 보여준다. 축구공을 들고 빈 침대 앞에 서 있는 아들의 모습과 총성이 울리는 동네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들의 모습으로 화면은 암전을 맞이한다. 그들은 케이트와 같거나 그 여신의 성도들 같다. 늑대들이 휘두르는 세상 속에 숨죽이고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구하는 작은 사람들.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건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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