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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Feb 12. 2017

외식

앞으로 매주 토요일 저녁은 외식할 테니까 그렇게들 알아.


 아버지는 어느 날, 가족 톡방에 통보하셨다. 처음 몇 주 동안 그 공략은 잘 이행되었다. 일식, 중식, 양식 등 메뉴도 다양했다. 그렇게 집 근처에 있는 모든 맛집을 다 섭렵할 듯했던 기세는 한 달이 지나자 휘청대기 시작했다.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과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민 자녀들의 시간을 맞추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어머니와 둘이서라도 외식을 하셨고 바쁜 와중에도 토요일 저녁 시간만큼은 사수하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그렇게 두 번의 계절이 바뀌고 겉옷을 의자에 걸어놓지 않아도 될 쯤에서야 다섯 식구가 모두 참석하는 외식을 할 수 있었다. 

이 날의 메뉴는 막내가 먹고 싶어 했던 소고기였다. 저녁을 먹기엔 좀 늦은 시간, 우리가 늘 가던 고깃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이 시간까지 외식 나온 사람들로 식당이 가득했다. 딱 한 자리, 우리 식구가 앉을 수 있을만한 자리가 입구에서 한눈에 들어왔다. 그 쪽으로 몇걸음 옮기다 보니, 바로 옆 테이블에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요란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며, 다른 자리는 없나 두리번 거렸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어쩔 수없이 걸음을 옮겼다. 엄마와 동생들은 내 뒤를 따라 왔고 나는 옆 테이블과 가까운 자리에 가서 앉았다. 

주차를 하고 조금 늦게 들어오신 아버지께서는 가만히 내 옆으로 오셔서 어깨를 툭툭 치시더니 옆으로 비키라고 하셨다. 그러곤 여전히 왁자지껄한 옆 테이블과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셨다. 옆으로 밀려난 나는 그런 아버지를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직원이 고기를 들고 오자 아버지는 자리에서 몸을 조금 일으키시며 손을 뻗어 고기를 받으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들고 계신 가위와 집게를 달라고 하시더니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려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빠는 좀 전에 이것보다 더 맛있는 걸 원 없이 먹고 왔어.


 아버지는 그렇게 아무도 묻지 않은 말을 혼잣말처럼 무심하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오늘도 남양주에서 일을 하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급히 내려오셨다. 오늘 외식 시간이 좀 늦어진 것도 아버지께서 일하고 오셨기 때문이었다. 일 하시다 보면 종종 고객 분들과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을 가족들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나 역시. 그런데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지난번, 이곳에서 외식을 했을 때 똑같은 상황, 똑같은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뒤통수로부터 부유물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런 것들에 서툰 분이셨다. 주변 사람들을 향한 애정과 관심이 남달랐고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행동도 각별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게 늘 자연스럽지 못한 구석이 있으셨다. 새삼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토요일 외식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하셨었다. 식구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일주일에 밥 한 끼라도 함께 했으면 한다고. 그 후로도 종종 이 얘기를 자신에게 되새기듯 말씀하곤 하셨다.

 가족들의 젓가락질 속도가 줄어들 때쯤 아버지는 집개를 내려놓고 젓가락을 드셨다. 배부르다고 하셨던 분은 여동생이 남긴 반 공기의 밥과 된장찌개, 몇 점 남아 있던 고기를 깨끗이 해치우셨다. 순식간이었다. 행여 먼저 식사를 마친 가족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까봐 그러신 걸까? 혼자 괜한 감성에 잠긴 난 그런 상상으로 아버지를 미화하려 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지는 걸 느낀다고 하지만, 나에게 아버지는 아직도 크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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