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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Apr 19. 2020

책_그 청년 바보 의사

군대에서 처음 이 책을 읽었다. 그렇게 안수현 형제님은 나의 첫 롤모델이 되었다. 이기적이고 독단적이었던 지난날을 회개하던 나에게 주님은 이 책을 보여주시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신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그의 삶을 흉내 내며 살아왔다. 나는 깨달음이 늦은 사람이라 우선 행동하고 나중에 복기하면서 배워가게 됐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읽은 이 책은 그때엔 알지 못했던 내용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더 또렷하고 구체적으로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주 나의 모든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붙들린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경외와 친밀함의 균형을 갖고 코람데오의 삶을 살고자 애쓴 모습이 책의 곳곳에 나타난다. “이 부족한 자를 당신의 도구로 삼아주셨다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그의 겸손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스도인은 의학적으로 혈관에 비할 수 있다.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그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더 많이 나누고 베풀수록 그 ‘혈관’을 통해 더 많은 피가 흘러, 혈관은 더 튼튼해지고 커져서 더 많은 생명의 피를 흐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을 통해 흐르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는 노력을 멈추면, 그 혈관은 퇴화되고 더 이상 생명이 전해지지 않는다. 마침내 주변의 다른 혈관이 자라나 그 일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날 나의 흉내들은 감정적이었던 것 같다. 섬김은 내가 여유롭고 풍족할 때의 즐거움이었지만, 내가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포기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나를 가르치셨다. 나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소홀히 했지만, 주님은 당신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내가 내 은혜를 독차지하려 할 때조차 주님은 내게로 흘러오는 은혜를 막지 않으셨다. 그 은혜는 반석 같았다. 내가 기대고 숨을 듬직함이기도 했지만, 부딪혀 깨어질 단단함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크고 집요하시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은진이 가족이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마음 문을 두드리게 하셨고, 내 후배 의사를 통해 그 열매를 거두셨구나! 나는 감사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당신의 일을 이루셨다. 그리고 그 성취에 내 이름을 끼워넣으셨다. 하나님이 일하신 과정 속에 나를 주어로 한 문장들은 온통 나의 연약함과 불순종과 죄악의 진술뿐이었음에도. 그 사실이 나를 깨트렸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게 만들어 왔다. 계속 목을 곧게 치켜드려는 이 완악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열심에 나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을 다녀와 새 삶을 시작한 나에게 이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이제는 더 성숙하고 슬기롭게, 더 진실되고 진정한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허락하신 사람들을, 오늘 내게 허락하신 것들로 섬기기 시작했다. ‘유로키나제 사건’으로 기도모임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한 일이라면 그 결과에 대한 내 생각과 기대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높으신 뜻과 행하심을 발견하고자 성실과 열심을 다했다.


“주님의 구속의 역사가 값을 치르고 이루신 것이었듯, 우리 헌신과 열정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닌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면서 열매를 맺는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이 시간임을 그분 또한 아시기에 귀한 시간을 드릴 때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니며 빚지는 분이 아니시다.”


 그렇게 점점 더 하나님께 드리기를 아까워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게 됐다. 하나님은 내게 아들을 주셨다. 이 사실이 내 삶에 더 선명해지고 실체적으로 느껴질수록 내 손이 얼마나 작은 지를 깨달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 작은 손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하게 됐다.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안수현 형제의 고백들이 내게 용기가 되고 소망이 되며 교훈이 되어 주고 있다.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최고 표현은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이 세상에서 만나는 마지막 크리스천의 역할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는 누가가 될 수 있도록 나의 눈과 귀와 마음을 더 열어야겠다.”

“한 사람의 작은 관심과 개입이 때로는 모든 장벽과 불신의 벽을 허무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선을 행할 능력도 없고, 선을 행하기에 서툴기만 한 나로서 참 많은 실수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낙담하고 의기소침해져서 힘껏 벌렸던 팔을 오므려 굳게 팔짱을 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의 약함과 실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사용하셔서 이 일을 행하시고 이 사람을 사랑하길 원하심을 이제는 더 확실히 믿는다. 오직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두려워하며 순종할 때, 나타나는 모든 결과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취하실 것을 믿는다. 이 믿음에 선을 행하는 자유와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너무나 불안하고 비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나 역시 말씀에 사로잡혀 살기를 갈망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 불안한 위치를 걱정했다. 롯은 하나님을 알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 신자임엔 틀림없으나 그의 신앙은 이성적 판단을 절대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만 순종한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풍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인데.. 마음이 아파왔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셨던 건 온전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새롭게 순종하는 내게 여러 시험들이 있었다. 그것은 이삭을 통해 민족을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비이성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것들이었다. 감사하게도 내 마음속 계산기를 부숴버리는 시험들을 은혜로 통과하며 더 깊은 은혜에 잠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의 수첩에는 중보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기도 제목들이 빽빽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안수현 형제를 흉내 냈던 것 중 하나가 중보기도였다. 오랜 시간 지체들을 위해 기도했었지만, 나는 최근에서야 공동체, 함께의 의미와 기쁨을 맛보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지난날 그들을 위해 했던 기도는 내 상급을 위한, 내 의를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지저분한 동기에서 솟아난 기도라 할지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되었던 걸 생각해보면 정말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기분 좋게 그냥 도와주고 빙그레 웃으며 제 갈 길을 가는 넉넉함이 우리 안에 얼마나 있을까?”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내 안에 있는 교만과 싸우고 있다. 선한 동기로 시작한 일에도 늘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나를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212p)”임을 잘 안다. 결국 그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해 마땅한 박수와 찬사를 탐하는 것이다. 그 박수 중 단 한 손뼉도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아마 평생 이 싸움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전선 속을 뒹굴면서 안수현 형제의 격려를 생각한다.


“각자에게 맡겨진 삶의 노래를 온몸으로 연주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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