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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Apr 16. 2020

책_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고든 맥도날드 저. IVP

“세상에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사는 것은 쉽다. 홀로 살면서 스스로의 의견을 좇는 것도 쉽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군중의 한 복판에서 고독 가운데 독자성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사람이다.(Ralph Waldo Emerson)”


 체스터턴도 비슷한 말을 좀 더 강직하게 했다. 이 혼란한 세상 속에 잠잠할 수 있는 힘, 요란한 소음에서 세밀한 주의 음성을 듣는 능력을 나는 구한다. 저자는 침묵을 강조한다. 맞다. 예수님처럼 고요한 시간과 장소를 갖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보다 필수적인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전진하는 신앙, 성장하는 신앙만 주창되는 것 같다. 그것은 성과주의에 미혹된 반복음적 사상이 아닐까? 성경을 살펴볼수록 성도의 제 일 덕목은 인내와 오래 참음인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소음에 파묻혀 살면서 언제 뒤로 물러나서 고요하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겠는가? …. 정기적으로 물러나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말씀을 묵상하는 게 즐겁다. 찬양하고 기도하며 내 삶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발견하는 게 신난다. 그러나 “들을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반드시 내 마음속에 입력되거나 관통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날마다 새로운 확신을 얻어야만 한다.” 이전에는 하나님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는 영역보다 모르는 영역이 더 많을 때 안다고 말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날마다 알아가야 한다. “바울은 회심한 지 2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알기 원한다고 말했습니다.(C. H. SPURGEON)”


 요즘 나는 “가장 사소한 행동조차 하나님께 의뢰하는 습관”을 만들고 있다. 이 훈련은 두 가지를 깨닫게 한다. 첫째,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스스로 주인 되어 결정해왔는지 깨달았다. “말로는 우리가 약한 존재이고 우리의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그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 습관이 너무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때마다 내 훈련을 방해한다. 내 훈련은 이 가시떨기들을 거둬내는 것이다. 둘째, 삶의 주권을 주님께 드릴수록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진리를 알 수록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한다!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푸라기 하나만 들어도 좋았다.”


“14장 친구들”은 꼭 필요하지만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닌가 싶다. 내게도 이런 친구들이 있지만, 저자처럼 그 친구들끼리도 친구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탓”에서도 이와 비슷한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독서 모임에서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 특히 “착한 그리스도인은 없었다”는 대목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든 맥도널드도 자신이 말하는 공동체는 “우리가 연약함이나 두려움과 싸우고 있을 때 투명하게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주”는 공동체라고 말한다. 이 공동체는 심지어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자기의 연약함을 이야기하는 것을 부탁할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하다. 오늘날 교회는 이런 공동체로써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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