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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Mar 31. 2023

#33. 세족

요 13:1-20

[1,3,5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모든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은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명의 끝을 알게 되면 의미 있는 일을 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의미 있게 행하신 일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일이었고 그들의 발을 씻기까지 낮아지셔서 섬기시는 일이었습니다. 주께서 의미를 두신 일이 제게도 의미 있는 일이 되길 원합니다.

 제가 아는 것은 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곧 나의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제 삶의 시작과 끝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안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고 섬기지를 않았네요. 제 이기심과 교만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물과 피로 정결해져서, 저도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기꺼이 낮아질 수 있게 하소서.



[6-8절]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가 생각하는 ‘주’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황했고 어쩌면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는 예수님을 향해서도 그것을 받고 있는 제자 동료들을 향해서도 베드로의 마음은 좋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베드로는 그 말씀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절대로’) 자기 생각을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그러면 너랑 나는 상관없다”라고 극단적으로 말씀하셨죠.

 예수님께서 제자들 중에서도 베드로를 각별히 사랑하셨던 것은 베드로가 제자들 중에 가장 연약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베드로의 충동적인 행동을 예수님은 언제나 사랑으로 응대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질문과 반발로 인해 우리에겐 예수님의 말씀이 더 풍성하게 남는 은혜의 결과가 생겼습니다. 베드로가 순순히 발을 내밀었다면,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시는 의미를 우리는 몰랐을 것입니다(10).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 위에 은혜를 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은혜가 실로 아름답습니다. 정죄와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과 인자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을 받으셔서 선으로 바꾸시는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10,1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제자 공동체를 향하여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지만,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교회를 세우실 때부터 이 안에는 마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마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모든 청중을 구원받은 자로 간주하는 것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이요, 예수님의 말씀을 괄시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에 해당되지 않은 자가 있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하지만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은 자들이 있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이 사실을 정죄의 빌미로 삼지 않게 하시고 도리어 겸손과 순종의 근거로 삼게 하소서.


[12,17절]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본문을 관통하는 하나의 동사가 있다면, ‘앎’인 것 같습니다(1,3,7,11,12,17,18).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저 그 행위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내(예수)가 너희(나)에게 행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것을 알길 원합니다. 지금은 알지 못한 것들을 이후에라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행한 것을 알아서 나도 행하며 살길 원합니다. 그 복을 누리며 그 복 안에 살길 원합니다.


[14-15절]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저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씻어 주심을 압니다. 그러므로 저도 제게 죄 지은 자를 씻어줌이 마땅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저를 섬기고자 낮아지심을 압니다. 그러므로 저도 제게 주신 제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겸손하게 섬기며 사랑해야 할 줄 압니다.

 그렇게 행할 때에 상대방의 반응이나 상태를 보지 않고 내게 본이 되어주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살라는 권면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옳고’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그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섬기지 않는 것은 그릇 행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가 그릇 행했음을 회개합니다. 제 모든 행동의 근거요 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따라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늘 순종하시는 주님 앞에 베드로처럼 혈기만 부리는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당신의 은혜와 사랑에 목말라 신음하는 저를 구원하소서.


[19절]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저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예언을 받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제게 미리 일러주십니다. 그러나 저는 막상 그 일이 닥치면 놀라고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주님, 지금 또 미리 일러주고 계신 그 말씀을 잘 듣고 마음으로 믿게 하소서. 믿음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덜 흔들렸으면 합니다. 믿음으로 견고히 세워져 가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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