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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Aug 27. 2016

엄니의 손등

 분홍색 케이스로 덮인 엄니의 오래된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기본음으로 설정된 알람은 단조롭고 투박한 멜로디로 귀를 찔렀다. 하지만 오랫동안 들은 탓인지 이젠 그 멜로디에서 정을 느낀다. 엄니의 알람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가족은 나와 엄니뿐이다. 아버지는 이른 새벽 일터로 나가시고, 멀리 학교를 통학하는 동생들이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시간에야 우리의 아침은 시작한다. 함께 차린 아침상에 반찬은 대부분 냉장고에서 꺼내오지만, 밥만큼은 언제나 따뜻했다. 가끔 너무 피곤할 땐 시리얼을 먹거나 누룽지탕을 해 먹기도 한다.  

 식사 후, 엄니가 설거지하는 동안 난 그 뒤에서 커피 포트에 물 붓고 스위치를 눌렀다. 엄니와 함께 즐기는 모닝커피를 준비하는 이 짧은 시간은 즐거운 기다림이다. 전엔 원두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작년부터는 동생이 사 온 캡슐 커피를 애용하고 있다. 난 여름이면 기구를 이용해 직접 더치커피를 내려 마시기도 했지만, 엄니는 언제나 특정 브랜드의 스틱 커피만 드셨다. 기계에 캡슐을 넣고 버튼을 눌러 커피를 내리면서 스틱 커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언젠가 내가 마시는 커피를 엄니에게 권한적 있었다. 날 보시던 엄니의 시선이 가만히 커피로 향하더니 자기 커피를 내려놓은 손으로 내 컵을 받으셨다. 종달새가 목을 축이듯 한 모금 마신 뒤 “괜찮네.”란 말과 함께 컵을 내 손에 올려놓곤 곧바로 자신의 컵을 집어 드셨다. 


 엄니의 커피잔은 Y자 모양에 연분홍 꽃이 그려져 있다. 보통보다 물을 조금 더 넣어 드시는 엄니의 취향을 맞추는 것은 이젠 익숙한 일이다. 엄니 커피를 서너 번 저으며 거실로 향했다. 엄니는 먼저 거실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며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보통 이쯤엔 뉴스가 나오거나 인간극장이 방영된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늦었는지 아침 드라마가 한창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오손도손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시선은 드라마를 향하고 있지만 티브이 소리가 대화에 방해되지 않게 들릴 듯 말 듯 낮춰져 있었다. 가족 중 누가 겪었던 일화, 주변 지인들의 소식, 건강, 쇼핑, 여행, 아침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 등 대화의 주제는 무궁무진했다. 직설적이고 단호하게 말하는 나와 달리 엄니는 포근하고 슬기롭게 말씀하시는 편이다. 서로의 화법과 가치관의 차이는 사소한 주제를 가지고도 흥미롭게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시너지가 되는 것 같았다. 가볍게 웃기도 하고 말없이 듣기도 하다 보면 금세 컵 바닥이 드러났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을 때 커피 방울이 튀었다. 탁자 위에 추락한 커피 방울을 보다가 그 옆에 엉거주춤하게 올려진 엄니의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꽃다발을 쥐듯 동그랗게 커피잔을 말아 쥔 손이 작아 보였다. 자글자글한 피부는 풀을 잔뜩 먹은 한지 같았다. 물 먹은 종이가 그러하듯 피부톤도 어두워 보였다. 


손 좀 줘봐


 갑작스러운 말에 엄니는 살짝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드라마를 보며 왼손을 슬쩍 내미셨다. 엄니의 손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엄지 손가락으로 그 손등을 쓸어내리며 감촉을 느꼈다. 불현듯 어릴 적 외할머니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그 낯선 감촉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니가 외할머니를 닮아가고 있기에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극세사 이불처럼 쓸어내리는 대로 힘없이 딸려오는 엄니의 피부가 날 원망하듯 쳐다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아침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가슴이 쓰라렸다. 인생의 전부라 생각했던 중고등학교 6년과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군대 2년이 하룻밤 꿈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20년 넘게 나와 달리기를 하고 있는 세월은 이미 내 기억의 출발점, 훨씬 전부터 울 엄니와 함께 뛰어오고 있었다. 이미 많이 지치셨을 텐데도, 나도 제법 뛰는 법을 익혔는데도, 엄니는 여전히 나와 바통을 나눠 쥐고 뛰고 계셨다. 성경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난 참 멍청하게도 울 엄니는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너무 당연한 것이라 도무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엄니의 손등이 외치는 항변에 내 생각은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몰랐었다. 분명 난 30대였을 엄니의 손등을 보았고 만졌을 텐데도 기억나질 않는다. 맘에 드는 이성에게 핸드크림을 사준 적은 있었지만 엄니의 손을 살핀 기억은 없었다. 아직도 내 것을 사주시는 엄니에게 내가 사드린 건 얼마나 될까? 엄니의 손등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반점들을 엄지로 황급히 가리고 말았다.

 티브이 위에 걸린 가족사진은 불과 몇 년 전이지만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우리 가족이 아니라 마치 우리와 닮은 다른 가족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 가족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수험생인 막내를,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둘째를, 여전히 팔팔한 세월에 앞에 예전 같지 않으신 부모님을. 당연하게도, 우리는 모두 백전백패했다.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태어나면서부터, 어쩌면 나기 전부터 싸워왔던 것이다. 그것은 죽은 부모의 복수를 하려는 무사의 숙명과 같았다. 그러나 여지없이 세월은 우리의 목에 칼을 겨누고 “영원한 것은 없다”라고 외쳤다. 영원한 것은 없다. 엄니의 피부에 점점 깊이 세겨지는 주름은 세월이 휘두른 칼에 베인 자국이었다. 


 시계를 보시더니 엄니는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두르셨다. 오늘따라 아침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끄면서 그 밑에 놓인 작은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가족 여행 때 찍은 만개한 코스모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니의 사진이었다. 엄니는 여느 여자와 다를 것 없이 꽃을 좋아하셨고 그중에서 코스모스를 가장 좋아하셨다. 몇 년 전 이사 준비를 하다가 발견한 앨범 속에서 젊은 시절 코스모스 밭에서 해맑게 웃는 엄니의 사진이 불쑥 떠올랐다. 그 사진과 티브이 밑에 놓인 사진 속에 코스모스는 바람에 순결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봄마다 울 엄니를 품어주었던 코스모스와 그 속에서 만개한 한 소녀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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