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증 / 우울증이 밀려올 때 필요한 것
조울증은 약을 먹고 치료를 계속한다고 해도 때때로 기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재발이 흔한 만성질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시에 일어날 수 있는 재발에 대비하여 안전장치 역할을 할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4가지 항목을, 중요도 순으로 정리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조증 혹은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는 스스로 관리하기 어려운 상태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당사자 본인보다는 평소 환자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가족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모니터링 하고)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필요시) 병원 치료나 입원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불행하게도. 가까이 있는 유일한 가족인 부모님께서 이 역할을 잘해주지 못하셨습니다. 심지어 조울증 환자로 진단받은(즉 공인받은) 현시점에조차도 제가 조울증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대응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서로 스트레스를 주다 보면 조울증 증상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때가 더 많습니다.
저의 다른 글에서도 몇 번 강조했지만, 조울증 환자는 '아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더 아픈 조울증 환자 당사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더 쉽습니다. 말하자면 환자의 가족에게도 '병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조울증 환자의 가족은 환자가 자신을 괴롭게 할 때, 인내심을 가지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의 말은 당연한 말 같지만, 환자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리 쉽지만도 않습니다.
약에 대한 반응성과 부작용이 환자마다 매우 다양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약물 종류와 용량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일종의 모르모트 쥐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이 과정을 잘 참고 견뎌야 합니다.
일단 약 조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면, 그때서부터는 미세 조정만 하면 되고 큰 변화가 없는 이상 기본적인 약물 설정을 가지고 조울증 관리를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주치의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옮겼다든지, 혹은 내가 주치의 선생님과 영 안 맞아서 병원을 옮기는 경우에 완전히 새로 약물 조정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1차 조정이 끝난 처방전을 확보하고 있으면. 새로운 선생님으로부터도 기존 처방에 이어서 약물 처방을 받기가 쉬워집니다. 또한 상태 변화가 있을 때에 미세 조정을 하면 되므로 상대적으로 조울증의 파도에 대응하는 것도 수월해집니다.
최근 제 상태는 경조증에서 잘못하면 조증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단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겪었던 불편한 상황이 반복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의식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침마다 달리기와 빠르게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됩니다. 땀이 날 정도로 강도가 적당한 운동을 매일 하니 감정기복을 조절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말하자면, 감정 조절에 실패하지 않도록 운동이 '최후 저지선'이 되어주고 있다는 감각입니다.
향정신성(?) 물질(Downer 혹은 Upper)은 기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신경 써서 섭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술은 어쩔 수 없이 마시더라도 주의해야 합니다.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다우너(Downer), 그러니까 기분을 다운시키는 안정제 역할을 합니다. 적당량만 섭취하면.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음주는 기분을 극도로 흥분시켰다가 다음날 아침에 숙취로 인한 심한 우울감을 느끼는 것을 반복하게 만들면서 기분 조절에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스스로 술이 절제가 안 된다 하시는 분들은 아예 안 마시는 게 좋습니다.
그 외에 한의원 중에서 한방으로 조울증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광고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이것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 조심해야 할 것이, 조울증 치료 중에 다이어트 한약은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조울증 치료 약물의 부작용 중에 체중 증가가 나타나는 경우가 흔한데, 그래서 다이어트 한약을 먹었다가 조증으로 튀어 버린 경우를 커뮤니티에서 많이 접했습니다. 한약으로 조울증을 치료하려고 하는 분이 있다면,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최근에 저는 경조증과 조증 사이 어디쯤에 걸쳐 있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다행히 이런 상태인 것 치고는 병식이 단단한 편이기 때문에, 최대한 화를 줄이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고, 온라인 쇼핑을 자제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네 가지 항목(사람마다 더 추가할 수도 있겠지요)은 조울증의 기분 변화 파도를 막아주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 줍니다. 저 역시 지금처럼 잘한다면 적어도 몇 주 이내에 정상 범위로 돌아오리라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조울증 당사자분들 그리고 그 가족 및 지인 분들도 조울증 재발이라는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시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