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빠가 되다
11월초, 서호주의 District Court 와 Supreme Court 에서 클럭쉽을 할 기회가 생겼다. 클럭쉽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판사님을 보좌하며 법원의 실제 업무와 과정을 가까이에서 배우는 일종의 연수이다. 매우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기회라서 경쟁력이 높다.
클럭쉽 기간 동안 나는 두 법원에서 각각 판사님과 체임버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다. 재판이 어떻게 준비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크고 작은 행정적인 일들도 도왔다. 단순히 구경만 한 건 아니고, legal research 나 사건 정리처럼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들도 맡겨주셨다. 꽤나 감사한 경험 이었다.
이번 클럭쉽을 통해, 나에게는 세 가지 의미 있는 결과가 남았다.
첫번째는 네트위킹
대부분의 어소시에이트들은 나와 비슷한 시기의 법대생이거나, 막 졸업한 새내기들이다. 아직 정식으로 admitted 되기 전, 1년 정도 배우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장차 크리미널이든 시빌이든, 법정에서 일할 미래를 정하는 사람들이고, 대부분 advocacy 를 생각하고있다.
같이 일하고, 이야기 하고,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면서 굉장히 좋은 인연들은 만들수 있었다. 그보다 더 값진건 판사님들과 직접 얼굴을 트고,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는 점이다. 변호사다 된다고 해도 판사님들과 이렇게 가까이서 시간을 보낼 기회는 흔치 않다. Supreme Court의 판사님은 개일 연락처까지 주셨다. 단순한 친절일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두번째는 커리어에 대한 방향성
3학년이 끝나갈 무렵인데도, 솔직히 나는 아직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어떤 분야의 법을 하고 싶은지, 어떤 커리어를 그리고 있는지 늘 흐릿했다. 그런데 이번 클럭쉽을 통해 조금은 선명해졌다.
나도 advocacy 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미널쪽, 그리고 디펜스보다는 프로서큐션의 길을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다. 그 전에, 판사님들 밑에서 어소시에이트로 1년정도는 꼭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생겼다. 아주 거창한 계획은 아니지만, 적어도 방향은 생겼다. 남은 1년의 공부를 잘 마무리하고, 준비해보고싶다.
세 번째는 크리미널에 대한 확신이다.
특히 District Court에서 다뤄지는 크리미널 사건들은 솔직히 말해 잔인하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흥미로웠다. 법정이라는 공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사람들의 선택과 결과.
‘아, 이건 나랑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커리어적으로 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 12월에는 또 하나의 큰 변화가 찾아왔다.
사랑스러운 딸이 태어났다.
아직은 신생아라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할 일도 많고, 배울 것도 정말 많다. 잠도 부족하고, 모든 게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묘하게도 마음은 든든하다. 뿌듯하고, 행복하다.
이제 공부도 1년 남았고,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무엇보다 내 사랑하는 아내와의 시간도 지켜야 한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 균형을 찾으며 살아가고 싶다. 법원에서의 시간과, 아버지가 된 순간이 겹친 이 몇 달은 아마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조금은 버겁고, 조금은 설레는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