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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Lee Jan 09. 2024

좋아하는 탁구를 치다가도

인정하기 보다 나를 세우려는 자존심

가끔 탁구 치면서 불편한 나를 보게 된다.

무엇일까?


보통 사람처럼 나도 오른손잡이다. 따라서 탁구칠 때 물론 오른손으로 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테니스 엘보우가 내게 불청객으로 찾아온 것이다. 거, 꽤나 신경 쓰이게 되었다. 알다시피 손을 쓸수록 그 부분에서 통증을 호소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해결책을 찾게 되는데, 그게 바로 왼손으로 탁구를 쳐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척 어설프고 제대로 배트에 공이 맞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몸이 원대로 반응하지 않은 것이지 않은가!

이전에 치던 습관이나 방법과는 너무나 먼 자신을 보면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언제나 오른손으로 치듯 할 수 있을까 하며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자신에게 새로운 변화라고 자신에게 의미를 주입시키면서 시도하다 보니 탁구 동료들의 격려와 무언의 감탄도 내게 전해져 왔다.


거기에 힘입어 얼마 전부터는 시합을 하는데 오른손을 섞어 가면서 배트를 이 손, 저 손을 사용하면서 해보았다. 왜냐면 지금으로서는 왼손으로의 시합은 무리라 판단되기도 하고, 결과가 뻔하기에 나의 변형된 스타일의 도입 그리고 결과가 승리로는 못 가더라도 얼추 비슷하게는 맞추고자 해서였다.


그래요.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나 자신에게 칭찬과 격려를 보내고, 또 다른 시도를 높이 사고자 한다.


그런데 나 자신이 특별히 복식을 하는 경우에 불편하다 느껴지기 시작했다.

부수가 나와 같거나 높은 이들에게는 경기에서 지금은 백전백패임을 인정하면서 운동한다.

그리고 그중의 한 분이 나의 짝으로 왔을 때 그분의 의도나 공격의 주도권을 인정하면서 잘 하든 못하든 넘어간다.

하지만 나보다 부수가 낮은 6-7부 되는 분들이 비록 지금은 내가 양손으로 겨우 시합에 참여하지만, 그분들이 주도하거나 뭔가 공격을 하여 실수 등을 하면  내가 보기가 어려워진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끄는, 주도하는 패턴의 탁구로 가지 않아서 맘이 힘들어진다. 그분들은 내가 리드하기가 어려우리라 여겨 팀으로서 스매시나 결정타를 날려 이기려 한 것이었으라 본다.


여기서 점검하면, 이전처럼 결정타를 날리지는 못해도 게임 운영이나 기술은 여전히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는 눈에 차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판단해 가르쳐 주려거나 조언하려는 맘이 종종 솟아나는 것을 감지한다.  하지만, 현재로 내가 도리어 실수를 많이 하는 입장에서  무엇을 멘트 하겠는가!

차라리 조만간에 실력을 가일층 높이면야  좀 더 리드하는데 상호 이해가 되리라 본다.

과거나 이전 경험에 기대면서 갈등을 빚는 나의 마음을 검토해 본다.


먼저, 현실 감각이 뒤떨어진 자신을 인정하자. 예를 들어, 족구를 할 때 자신은 이전과 비교하여 얼마나 둔한 자세, 무감각이 돋보였는지 스스로 모른단 말인가!


둘째, 과거의 수준이나 경험에 기대어 판단하려는 나를 내려놓자. 이는 습관적으로 가르치는 직업적 태도가 상대에 따라 나타나는가 보다.  배우는 자로 돌아선다면 어떨까!


셋째, 내가 주도하기보다는 함께 즐겁게 사는 길을 찾자. 높고 낮음의 차별을 통해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은근히 즐기기 보다는  함께  기쁨을 만들고 즐기는 길로 가자구나.


넷째, 남이 잘하는 것이나 혹 실수라도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그릇으로 가자구나.

종종 내 차를 추월하는 차를 보고 느끼는 그 기분이 어떤가? 지는 것 같고, 밀리고 처져 낙오자 같지 않던가?  내 밑에 있던  자가 나보다 잘해 승급, 승전, 승자가 된 그를 보는 나의 상황이다.

여기서 그들보다 더 나은 자리로 가려 노력하든지, 그렇지 못한 위치라면 인정하고 박수를 쳐주든지, 나이나 체력이나 여러 여건상 더 뛰어나지 못한 경우는 그 위치에서 자신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도 한 길이 되리라 본다. 나 같은 자를 그래도 팀으로 끼어주고 함께 보듬는 그들을 높이고 감사하자꾸나. 언제까지 남위에 서려고만 할 것이며,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과거의 경력과 업적에 기대어 평가하려만 할 것인가!


시합에서 꼴찌가 되더라도 뛸 수 있어서,

혼자가 아닌 여럿이 같이 가는 운동이어서,

상대가 나를 인정하고 나의 연약을 품어줘서,

나도 그들을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봐줘서

감사하고, 상대를 높이는 지렛대로 살고자 한다.  어떤가,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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