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라우터 즉, 무선 공유기를 손 보러 온 친구가 있었다. 이게 인터넷 연결을 요청한 지 5일째에 이 회사 기사가 방문한 것이다.
그 기사는 위층에 고장 난 곳 수리와 함께 아래층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벨이 울려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마침 엘리베이터 앞 전등이 꺼져 있어선지 그 기사가 명확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얼굴의 소유자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미 위층으로부터 연락을 받은지라 반갑게 들어오라 하였다. " 들어오세요." 그는 들어오면서 무선 공유기를 점검하겠다고 말하였다.
모뎀과 그 공유기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자 들고 온 연장통을 내려놓고 케이블을 포함해 하나씩 점검하였다.
그때 나는 그 곁에 서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일단 그 기사가 찾아와 반가웠다. 이제는 외부와 막혔던 두절이 해결되었다 여기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요청한 지 며칠째야? 회사가 이렇게 서비스를 해도 되냐? 위층 사모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회사를 바꿔야 하는 것 아냐?'
그리고 조금 있다가 그 친구에게, " 제대로 인터넷 속도가 나는지 점검해 줘요." 부탁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 연장통 속에서 하얀 티슈를 꺼내 얼굴을 닦았다. 그러고 보니 일하느라 계단을 오르고 내리느라 더워 땀을 흘린 것이다.
그러고서는 그 친구가 그제야 선풍기를 틀어달라 한다. 그래 맞아! 30도 넘고 습한 날씨지. 집에 있는 내가 덥지 않으니 그분의 형편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황급히 틀자 천장에서 생 하면서 바람이 내려온다. 그 검은 얼굴에도 안색이 돌면서 한결 여유가 생긴 듯 보였다.
그러자 그 순간 이전 고등학생인 딸이 전해준 그의 담임인 베트(Beth)에 대한 태국 이야기가 떠오른다.
역사 전공인 그 선생님은 하루 종일 학생들을 가르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밖으로 나간단다. 더운 태국 오후는 누구에게나 마실 물이 필요하리라. 집 근처 공사장을 향하여 자전거를 몰고 가는 그 선생님! 핸들 중간에 위치한 바스켓에는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차가운 물병들이 놓였다.
누군가를 알아서 찾아감이 아니요, 단지 그들에게 시원한 물 한 컵을 주고자 간 것뿐이란다.
그래서 물을 따라주고 온단다.
어찌 이 시간에 이 이야기가 떠오른단 말인가!
"잠깐 만요" 하면서 급히 냉장고로 가 컵에 차가운 물을 따라 그 친구에게 건네줬다. " 꿀꺽꿀꺽" 쉬지 않고 들이켰다. 더 들겠냐 했더니 됐다고 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 친구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어찌 이런 생각을 못했단 말인가? 집으로 찾아오는 이는 모두 귀한 손님인데 말이다. 이 시간에, 이곳에, 이 사람이 바로 나를 만난 분이라면 얼마나 특별하고 귀한가! 그런 분을 두고 이렇게 푸대접을 한단 말인가!
이제는 습관적으로 살아온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숨통이 터진 듯 안도의 한숨을 쉬고서는 다른 한편 나를 힘들게 한 회사를 향해 짜증을 끄집어내느라 정신이 팔린 것이었다.
그러니 바로 앞에 있는 그 친구의 형편은 내 안중에 없었다.
그는 며칠 전 사이클론으로 두절된 케이블 등을 수선하느라 밀린 고객 민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집 저 집을 찾아가는 바로 이 친구는 나로서는 단지 회사의 한 직원일 뿐이었다.
내가 하고 싶거나 익숙한 일을 못하게 되면 불편하고 짜증 난다.
그런 사이에 사람으로 관심받고 사랑받아야 할 이들이 내 시야에서 멀어져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도 큰 것이 아니라 시원한 물 한대접일 수 있는 마음까지도 어디 갔단 말인가!
조금씩 나의 익숙함에서 멀어지면 언제나 불편이라는 그림자가 작아지려는가?
그런 시간에 나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을 마주 볼 기회나 틈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 친구가 점검을 다 마치고 현관문을 나선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엘리베이터가 닫힐 때까지 배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