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생긴 일
2011년 9월 27일, 우리 가족은 말로만 듣던 호주땅에 처음 도착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뒤돌아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결정을 했던 것 같다.
2011년 5월, 캐나다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네 회사에 자리가 하나 났는데 올 생각이 있냐는 것이다. 이력서를 어찌어찌 써서 한 번 보냈는데 조금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해서 다시 써서 보내야 하는 마지막날, 지인을 통해 호주에 있는 어떤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둘 중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캐나다를 포기하고 호주업체의 사람이랑 무지개빛 꿈을 꾸며 (한국에서) 미팅을 가졌다. 결론은 영어 때문에 지금은 곤란하다는 것이다.(허걱, 캐나다 괜히 포기했다.)
거의 이민을 포기하다시피 하던 그 해 8월, 일하고 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개발경력이 짧고 나이가 많은 내가 대상자가 되어서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시 이민의 길을 찾아보게 되고 그렇게 찾아낸 길이 '학생비자로 들어가서 1년 동안 영어공부를 하고 이민신청을 한다.'라는 것이다. 그땐, 영어만 되면 영주권을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결정하고 에이전트를 통해서 학생비자를 신청하고 비자가 나오기도 전에 호주, 멜번에 있는 집을 알아보고 렌트계약을 한다. 호주에 있는 집주인과 국제메일로 계약서를 주고받으며 계약을 체결하고,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호주로 이민을 갈 거라며 인사를 다녔다. 다시 말하지만, 영주권은커녕 학생비자도 나오기 전이다.
9월 초, 해외이삿짐업체를 수소문해서 알아보고 집에 있던 짐들을 이미 계약한 멜번의 집으로 이사배송을 한다. 여전히 학생비자는 안 나왔다. 이삿짐은 배를 타고 가기 때문에 40-5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해서 부랴부랴 보낸 것이다.
9월 중순, 드디어 기다리던 학생비자가 나왔고 여행사를 통해서 9월 26일에 한국을 출발하는 베트남항공 비행기표를 구했다.
드디어 한국을 떠나는 날, 여행사 직원이 12번 게이트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해서 배웅을 나온 교회식구들을 뒤로 하고 게이트를 찾아서 기다린다. 그런데, 그런데, 출발시간이 20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게이트는 닫혀있다. '어라! 뭔가 잘못되었는데!!'라며 티켓을 잘 살펴보니 12번 게이트가 아니라 112번 게이트였다!! 그래서 우리(나, 아내, 7살, 4살 딸 둘)는 112번 게이트를 향해서 달렸다. 문제는 우리가 이민가방 4개를 이미 비행기에 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용 캐리어 4개에 백팩이며 크로스백이며 잔뜩 메고 있었고, 12번 게이트(는 국적기용)와 112번 게이트(해외국적기용)는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엄청나게 멀었다는 것이다. 112번 게이트를 가려면 무려 셔틀전철을 타야만 했다. 아내와 나는 여행용 캐리어를 두 개씩 끌고 어린 딸들을 보채며 에스컬레이터를 계속해서 옮겨타고 딱 맞게 들어오는 셔틀전철을 타고 112번 게이트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해외국적기용 터미널에 도착하자 방송에서는 '이원철'씨를 찾는 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112번 게이트 쪽에서는 항공사 직원들이 우리를 찾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겨우 시간에 맞춰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아찔한 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을 떠났고 지금은 호주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