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곤율의 역설
우리는 도시 빈곤율을 문제로 바라본다. 도시에 가난한 자들이 많다는 것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살기 어렵다는 증거로 쓰인다. 단순히 노숙자, 혹은 판자촌 등의 주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집을 갖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쉽게 차라리 땅값 저렴한 시골에 가서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조언한다. 도시는 과연 부자들만의 소유물일까? 가난한 자들에게 도시는 사치일까? 역설적이게도 도시는 부자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도 훌륭한 삶의 터전이다.
우리 주위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는 일자리가 있다. 집에는 건설 노동자들과 부동산업자들의 일자리가 존재하며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산과 들판에도 농부와 관리 공무원 등의 일자리가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이용하는 매장의 종사자들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손에 닿는 모든 것들,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에는 일자리가 있다. 그러나 그 일자리의 숫자는 지역마다 다르다. 많은 것이 있는 곳에는 많은 일자리가, 적은 것이 있는 곳에는 적은 일자리가 있다.
도시는 사람이 많고, 건물이 많고, 물건도 많다. 그리고 우리 눈에 띄는 한 가지의 산업은 그 산업 종사자들 뿐만 아니라 그 산업에 연관된 일자리들, 그리고 그들이 소비에 대응하는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도시에 산업이 풍부하다는 것이 당연하듯, 그 산업들이 여러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기에 도시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많은 것들에는 단순히 비싸고 좋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싸고 허접한 것, 조잡하고 더러운 것, 단순히 물건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고 사는 것에 관련된 모든 것들에는 저렴한 것들이 존재한다.
충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여러 일자리들도 포함이다. 특정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특정한 능력이 필요하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특정 직업을 얻기 위해 필요한 투자의 양과 질은 다르다. 이러한 직업들의 존재는 절대로 재앙이 아니다. 이러한 직업들은 가난한 이들,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동시에 지역에 많은 기여를 한다. 의사, 변호사도 길거리 청소부, 매장 아르바이트생, 배달기사 없이 질 좋은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 우리가 사는 모든 곳은 저렴한 일자리를 요구하고, 사람들도 저렴한 일자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는 도시에서 더욱 풍부하다. 수많은 산업들로 이루어진 땅에서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뒷받침할 저렴한 일자리가 필요하다. 가난한 이들이 없는 도시는 우리가 익히 아는 구절처럼 의사도 길거리 청소를 하고, 변호사도들도 직접 밥을 해먹어야 한다. 그들이 귀한 몸이기에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효율 적이라는 것이다. 즉, 도시의 효율을 위해서는 저렴한 일자리가 필요하고, 교육받지 못한 이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도시의 산업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반면 비도시 지역에서 우리는 비효율 적으로 변한다. 각자가 버는 돈을 쓸 곳이 없다. 우리는 직접 길거리를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어먹는다. 직접 움직이지 않고는 무언가를 얻기는 힘들다. 그리고 누구도 그런 일을 대신 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식당을 만들어도 돈이 되지않으며, 길거리를 청소해도 돈이 되지 않는다. 비도시 지역의 개인들은 자기충족을 해야하고 그렇기에 비효율 적이다.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이들이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도시에 훨씬 풍부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들이 누리지 못하는 많은 것들은 그림의 떡으로 여기더라도 도시에서 사는 것이다. 우선 돈을 벌어야지 가격표도 따지게 되는 것이다. 시골 마트에서 500원이던 음료수를 2000원 주고 사먹든 짜장면 한 그릇에 6000원을 주든 직업이 있고, 돈이 있어야지 고민할 수 있다.
더불어 도시는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복지를 제공한다. 도시의 풍부한 산업은 도시 전체에 많은 잉여를 제공하고 도시 행정부에 많은 세수를 제공한다. 이러한 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세련되고 깔끔한 'citizen'을 위해서만 쓰이지 않는다. 도시가 원하는 것은 세련되고 깔끔한 'city'이다. 이런 면에서 가난한 이들은 도시에 해가 될 수 있다. 그들은 도시에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도시는 그들이 가난하고 더럽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느다. 단순히 연민과 인권의 측면이 아니다. 도시를 더 고급스러운 도시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들을 내쫓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도시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을 내쫓는 순간 도시는 무너지게 된다. 그렇기에 도시는 이들을 어떻게 이상적인 도시에 녹아들 수 있게할지를 고민한다. social mix는 그 예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뭉쳐놓은 할렘은 티가 나지만, 부유층 사이에 가난한 이들은 조금씩 끼워놓으면 전체적인 그림이 깔끔하게 완성된다. 세수를 조금씩 제공하여 그들이 도시에 녹아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냉혹하지만 우리는 구걸을 하는 이들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보다는, 그들이 눈에 띄지 않도록 돈을 내는 것을 선호한다.
도시는 그들이 굶고 다니지 않도록, 집없이 길거리에서 잠들지 않도록, 악취를 풍기며 돌아다니지 않도록 애쓴다. 앞서 이야기했듯 복지는 단순히 따뜻한 마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복지는 도시의 깔끔함을 위해, 가난한 자들이 도시에서 떠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가난한 자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복지를 제공받으며, 도시에 녹아들게 된다. 그렇게 가난한 자들은 도시에 있으면서도 없게 된다.
도시에 빈곤한 자들이 많다는 것은 절대로 악이 아니다. 그 도시가 더 많은 산업을 지탱할 수 있다는 증거이며, 그 도시가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가난이 없는 도시가 좋은 도시인가? 가난이 없으면 부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는 가난을 없앨 고민을 하기 이전에, 가난한 자들이 충분한 기회와 삶의 질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