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몰락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는 부족해

by geog kim


항상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우리에게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안정감을 준다. 우리가 평범하다는 사실, 우리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인식은 우리의 욕망이 말 그대로 욕망임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받아들이는 '평범함'은 실제 우리가 사는 사회의 평균이 아닌, 우리가 인식하는 평균이다. 중산층의 몰락은 경제의 몰락이 아닌, 인식의 몰락이다.



우리 주위를 구성하는 이들 사이에서 우리는 항상 평범하다. 이들은 당연하게도 우리 자신을 기준으로 형성된 관계이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비슷한 학교를 나온 사람들, 비슷한 직업을 가지고 비슷한 월급을 받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집단의 평균에 속한다. 단지 평범한 학생이거나, 재벌, 군인, 혹은 국회의원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과 관계를 쌓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공평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사촌이 땅 산 소식은 들려오지만 사촌이 망한 소식은 잘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이룬 성취를 자랑하고 부끄러움은 감춘다. 새로 산 명품 지갑은 자랑하지만 그 덕에 텅텅 빈 지갑은 숨겨진다. 둘째, 우리는 욕망이 현실화된 모습에 자극받고 기억을 남긴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는 것 또한 편향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보게 된다. 스스로가 아무리 평범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상위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성취를 이루는 순간 주위 집단은 변화하게 된다. 우리 주위에서 '상위 계층'에 속하는 모든 이들은 그들의 집단에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병원에서는 의사가 평범하고, 강남에서는 돈이 평범하다. 우리가 노력하여 입성한 모든 집단에서 우리의 성취는 별 것 아니게 되며 또 다른 욕망이 우리를 자극하게 된다. 평범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인식할 수 없다.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OECD 기준(중위 소득의 75~200%)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상위 58%~상위 29%에 해당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이와 다르다. 'OECD 기준 중산층과 체감 중산층의 괴리' (이준협, 2013)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연봉 6000만 원&순자산 7억 8천만 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평가하였다. 이들은 최소한 상위 10%에 드는 수치로 상류층에 가깝다. 평범한 이들이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중산층은 인구 구조의 뼈대를 이룬다. 이들에게는 복지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 안정적인 수입으로 세수를 충당하면서도 국가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제어하거나 감시할 이유 또한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인력들을 공급하는 계층이라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모험과 도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스스로 평가하는 중산층의 개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업은 구해야 되고, 세금은 아깝지만 어쩔 수 없고, 특별히 부족함 없이 사는, 안정적이고 무난한 이들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문제는 발생한다. 안정적인 직장인이 갑자기 비트코인에 전재산을 투자한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생각으로 스타트업에 뛰어든다. 개인의 삶이 무너지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 차치하더라도, 국가의 입장에서 이들의 변칙은 심각한 문제이다. 세금이 걷히지 않는다. 노동자가 부족해지고 복지의 도움을 받는 이들이 늘어난다. 리스크를 조절하려는 정책은 사다리 걷어차기가 된다.

중산층은 숫자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하지 않는 순간, '이 정도면 부족함 없다'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중산층은 무너진다.


이전의 글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도시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https://brunch.co.kr/@pauluhill74/11) 가난한 이들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은 해주는 대신 돈을 받는다. 부가 없는 곳에서는 그 어떤 작은 일도 주어지지 않는다. 가난이 있어야 부가 있을 수 있고, 부가 있기에 가난이 있다. 도시는 엄청난 부가 존재하는 곳으로, 당연하게도 엄청난 가난이 공존한다.

부와 가난의 공존이 우리 인식에 미치는 영향은 명백하다. 도시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기 쉬운 사람과 공간이 존재한다. 백화점의 명품관을 지나치거나, 고급 빌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평범함을 잊는다. 도시는 모든 공간에 부를 전시해두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들은 관광객일 뿐이다. 전시품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착시는 무난하던 그들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인터넷 공간은 더 큰 역할을 한다. '#'버튼이나 기사 하나만으로 우리의 온갖 욕망을 담아내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퍼 나른다. 심지어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들의 삶에 침투하기도 한다. 연예인이 건물을 샀다는 소식이 '뉴스'씩이나 된다. 성공한 누군가의 삶, 혹은 성공한 것으로 꾸며놓은 누군가의 삶이 인터넷 공간에 전시된다. 우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그들의 성공에 패배감을 몰락에 희열을 느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픈 시대는 지나갔다. 누구라도 땅을 사면 속이 쓰려온다. 우리 삶의 Scale이 커질수록 우리는 가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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