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배달 서비스 'B마트'와 공간의 혁신
어릴 때는 마트에 가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었다. 시식 코너에서 이것저것 집어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부모님께 생떼를 부리면 내 것 하나쯤 챙겨갈 수도 있었다. 그 시절의 '장보기'는 집 안에 먹을 것을 쌓아두는 것 이상의 콘텐츠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당연한 일상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 구멍가게와 재래시장, 대형마트를 거쳐 이제는 내 방의 핸드폰으로 장을 보고 있다.
흔히 '마트'라고 이야기하는 시장은 취향, 나이를 떠나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가 최근에 경험했듯 클럽을 맘대로 가지 못해도, 놀이공원을 가지 못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다만 냉장고를 채우는 일은, 그 자체로 밥을 먹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밥과 고기는 있어야 살지 않겠는가.
그만큼 식사거리를 준비하는 것은 가장 일상적인 외출이었다. Z세대에게도 '장보기'라고 하면 대형마트에서 먹거리를 잔뜩 사서 냉장고에 욱여넣는 모습이 익숙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 세대의 장보기는 온라인 쇼핑과 결합하여 현관문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 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장을 보러 가지 않는다.
쿠팡, 그리고 배달의 민족,
시작은 쿠팡이었다. 쿠팡의 등장 이전까지 식재료를 인터넷으로 주문한다는 것은, 오프라인으로 구할 수 없는 귀한 음식을 주문 하는 개념에 가까웠다. 최소 이틀 이상 걸리던 택배는 하루하루 그날의 먹을 것을 고민하는 우리의 문화와는 맞지 않았다. 요건대 먹고 싶은 것을 언제 먹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이 시차를 하루로 줄여놓았다. 택배는 이틀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깨부순 것이다.
이 차이는 신선식품을 주문할 때도 큰 불안이 없도록 만들었고, 하루 정도의 기다림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참을 만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변화는 매우 빠르게 나타났다. 대형마트 3사(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는 입지의 장점을 앞세워 익일, 그리고 당일 배송 서비스를 개시하였고, 이에 질세라 마켓컬리와 쿠팡도 새벽배송 서비스를 내놓았다. 지금까지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던 경쟁이 온라인으로 장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B마트, 즉시배송의 등장이다. B마트는 배달의 민족에서 2019년 개시한 서비스로 코로나 19 를 호재 삼아 빠른 속도로 확장해 나가는 '배달형 슈퍼마켓'이다. 흥미로운 점은 도심에 위치하면서도 오프라인 판매는 전혀 하지 않는 '창고'라는 것이다. B마트는 배달의 민족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면 각 영업소에서 이륜차를 이용해 한 시간 이내로 상품을 배 달해준다. 기존의 마트, 혹은 물류센터로 정의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현재까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 홍성국 국회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따르면 B마트는 서비스 개시 이후 올해 8월까지 매출이 900% 이상 증가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같은 기간 편의점 업체의 배달 매출이 절반까지 떨 어졌음을 생각하면 가히 충격적이다. 이 모든 것이 서울 내부 30개가 채 되지 않는 15평 남짓의 지하 영업소에서 이루어낸 일이다.
물론 기존의 SSM규제 등을 피해가는 비즈니스이고, 때문에 지역 상권을 파괴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부동산 | 과 '장보기' 문화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핵심은 단어 그대로 '상권 자체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비자가 | 상점을 직접 찾아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으나 이제는 상점이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고 있다. 갑자기 삼겹살이 먹고 싶다면 멀리 대형마트도, 집 앞 정육점도 필요 없이 앉아서 핸드폰만 몇 번 두드리면 끝이다.
알리바바의 CEO 장융은 2018년 B마트와 유사한 서비스인 '허마셴성'을 소개하며 “앞으로 냉장고는 필요없을 것”이라는 '냉장고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중국보다 조금은 늦었지만 '배달의 민족인 한국에서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 주목할만하다. 머릿속에서 떠올린 것을 눈앞까지 가져오는 시간은 이제 줄어들 때까지 줄었다.
공간과 콘텐츠
가장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식료품/생필품 시장의 발전도, 배달 시장의 발전도 아니다. 우리는 이제 외출할 일이 없다는 것이 다. 앞서 이야기했듯 식료품을 사러 나가는 일은 우리의 가장 일상적인 외출이었다. VR/AR 등의 발전은 온라인 쇼핑의 단점을 극 복시킬 것이고, 물류 기술은 점점 발전할 것이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을 우리 눈앞에 즉시 가져다줄 것이다. 세 차, 세탁, 꽃 배달 서비스에는 이미 익숙해진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외출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나가야 하는 이유를 떠올리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클럽을 안가도, 놀이공원을 안 가도 살아갈 수 있지만, 그것들이 없다면 마땅히 나갈 이유도 없다. 요컨대, 이제 공간이 스스로 고유의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한다 면 사람을 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외출의 욕구는 느껴도 외출의 필요는 못 느끼는 것이다.
이제 공간은 어떻게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들을 유혹해야 할 것이다. 기존처럼 상권에 편승하여 뻔한 간판을 내걸고 매출 을 올리는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장 보러 나갔다가 카페에 앉아있지도 않을 것이고, 세차하러 갔다가 국밥집을 가지도 않을 것이다.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공간 자체가 외출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닌,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콘텐츠에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