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 살아야 하는가.
북극곰을 보면서 추운 곳에 사니 고생이 많다거나, 동굴 속 박쥐에게 어두운 곳에서 지내니 안타깝다거나 하는 얘기는 다소 이상하게 들린다. 각자에게 적합한 환경과 적합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평생을 우리가 살기 좋은 곳을 찾고, 그곳에서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산다. 우리 모두 '살기 좋은 곳'을 원하지만, 어쩌면 그것을 쟁취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은 그것을 정의하는 일이겠다. 낙원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지옥이 기다릴 수도, 지옥이라 생각했던 곳에 낙원이 있을 수도.
생태적 지위로도 번역되는 생물지리학의 'Ecological Niche' 개념은 '특정 생물종'의 서식에 요구되는 '특정 환경'을 의미한다. 아래 사진에서 따개비 속의 Chtamalus와 Balanus는 적절한 예가 되어준다. 따개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해안가 주변의 바위 등에 붙어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사는 갑각류의 일종이다. 고로 따개비의 일반적인 서식 조건은 '해안가 바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따개비 두 종은 서로 다른 Niche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종이 요구하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Chthamalus의 경우 해안으로부터 서식 가능한 거리가 Balanus보다 길다. 즉, Chthamalus는 '생존에 요구되는 조건'을 조금 더 쉽게 충족할 수 있고 '더 넓은 범위의 환경'에서 서식 가능하다. 여기까지가 기본적 지위인 Fundamental Niche의 개념이다.
그러나 다른 생물종이 개입되지 않은 환경만으로 생물종이 서식하는 범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Balanus의 경우 Chthamalus보다 서식하는 조건이 까다롭지만 종 간 경쟁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다. 즉, 서로 같은 환경에서 부딪히게 될 경우 Balanus는 Chthamalus를 쫓아내고 공간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경쟁 등의 요인이 결합된 실현 지위, 즉 Realized Niche 개념이다.
정리하자면, 따개비가 서식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환경은 '해안가 주변의 바위 등'이며 Chthamalus는 Balanus보다 서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대신(Fundamental Niche), 경쟁에서 약해 실제로 서식하는 범위가 좁다.(Realized Niche)
이처럼 각각의 생물은 스스로에게 적합한 환경이 있고, 그 각각의 Fundamental Niche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따뜻하고, 울창한 숲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생물에게는 축축하고 퀴퀴한 곳이, 또 어떤 생물에게는 메마르고 황량한 곳이 최고의 서식지일 것이다. 또한 원하는 환경이 있더라도 그곳에 모두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포식자를 피하거나, 혹은 자원이 한정되어 밀려나는 생물들이 존재한다. 경쟁에서 밀려나 자신들의 Fundamental Niche를 실현(Realize)하지 못하면 지구 환경이 변화하지 않더라도 멸종하게 될 것이다.
생물종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대게 진화론으로 귀결된다. 충분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이다. 다만 일반적인 진화론에 매몰되어 생물이 충분히 능동적이라는 점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단순히 환경에 의해 자신의 신체를 바꾸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 조건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찾고, 그 곳에서 경쟁을 통하여 자신들의 공간을 꾸리는 것이 생물종이다.
진부한 글을 쓰고 싶진 않았지만 뜬끔없는 생물지리학 이야기를 했으니 '사람도 똑같다'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 비교를 할 때는 그 기준점이 명확해야 한다. 생물종 전체에 적용되는 Niche와 사람은 어떤 점에서 비교할 수 있을까. 우선 확실하게도, 인종은 아닐 것이다. (맞다고 생각하면 다소 유감스럽다.) 사람이 사는 곳을 결정짓고, 함께 할 무리와 생존 양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우리의 사회적 배경일 것이다.(이때는 인종이 적용될 수 있겠다.) 우리의 서식 조건, 예를 들면 경제력과 고향,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 등은 사회로부터 결정되고 우리는 그 사회에서 우리의 Niche에 충족되는 환경을 찾아 생존해 나간다.
순서를 좀 바꿔 경쟁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대부분의 생물종이 온화하고 강수량이 풍부한 지역을 좋아하듯 많은 사람들은 깨끗하고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에 살기 원한다. 이는 도시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도시, 그 중에서도 더 크고 깨끗한 도시에 살 수 있고 살기 원하지만(Fundamental Niche) 이는 모두에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경제력을 따져봐야할 것이다. 단순하게 내가 살고 싶어하는 곳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도시에서 제공되는 직장에 더 능력 있고 우수한 사람들이 지원한다면 우리는 더 질이 낮은 직장을 찾아 떠나야 한다. 우리가 지역의 텃세를 이기지 못하거나 도시 서비스에 접근할만한 이동수단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우리의 Realized Niche는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대부분이 도시를 원할지언정,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가족을 떠나 상경한 사람들이 그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흔히들 들어봤을 것이다. 반대로 지방에 부양할 가족이 있거나, 직장을 가지고 있어 도시에 살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니면 시골의 한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등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겠다. 애초에 이들에게 도시라는 공간은 Fundamental Niche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기본적인 조건과 경쟁을 통해 자리를 잡고 생존해 나간다.
도시를 예로 이야기했지만 이는 모든 공간에서 적용되는 내용이다.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집단을 꾸리고 자신의 설 자리를 찾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비슷한 환경,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사회적 생물종'이다. 이들은 우리와 함께 다른 집단에게 자신의 서식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투쟁하고 우리가 사는 환경을 우리에게 더욱 적합하게 만들고 있다.
만약 내가 사는 공간이 맘에 들지 않거나, 새로운 공간을 찾아 떠날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보자. 나의 Fundamental Niche는 무엇이며, 이 중에 최적의 생존 환경에서 서식하기 위해 어떤 경쟁을 해야할까.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서 내가 서있을 자리 하나 찾는 것, 그리고 그곳을 우리에게 적응시키는 것은 우리 삶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