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거일이 되면 TV에 그 무엇보다도 지도가 많이 나올까? 왜 지도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성별이나 나이보다 크고, 선거의 승패를 가르쳐줄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어린이들도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게 느끼는 감정 혹은 이미지가 있다. 사실 여부에 논란이 있지만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로 처참하게 살해당한 이승복 씨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물론 당시는 무장공비가 민간인을 살해하고 다니는 등 횡포가 극심하던 시기였지만, 이와 별개로 사건의 당사자인 이승복 씨가 충분한 깊이가 있는 '정치적 신념'과 '반공주의'를 가슴에 품고 그러한 이야기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시에 세뇌 수준으로 진행되던 반공 교육을 포함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국민들에게 공산당에 대한 감정과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은 정치적이지 않은가? 적어도 그 텍스트 자체는 확실히 정치적이다. 그리고 아마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에 대한 단순한 감정과 이미지가 정치적 신념과 반공주의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승복 씨는 각종 교과서에 실리고 동상이 세워지며 반공주의의 아이콘이 되었다. "공산당의 폭력에 굴하지 않은 용감한 어린이와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북한 무장공비" 정도로 사건은 정리가 되었다.
어린아이의 말 따위에 격분하여 무자비하게 살인을 저지른 무장공비들에게 크게 분노가 이는 사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잔인하게 살인당한 어린아이를 '영웅'으로 만들어 선전에 이용한 당시의 사회에도 깊은 유감을 느낀다. 그런데 초점을 다시 '정치'에 두자.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을 어린아이가 어쩌면 그렇게 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앞서 단순히 반공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만을 이야기했지만 아마 조금 더 치밀한 문제였을 것이다.
무장공비가 침투하던 지역에서 정부의 고민은 단순히 무장공비의 횡포뿐만이 아니다. 간첩은 단순히 요인 암살과 정보 습득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침투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선전과 위협을 통해 전향시키는 것 또한 그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당시 간첩의 침투가 활발했던 강원도~경상북도 해안지역에서는 주민들에 대한 반공주의 교육이 크게 요구되었고, 현재까지도 정당 지지율에서 나타날 정도로 그 목적에 있어 꽤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는 누구나 정치에 대해서 처음 접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때의 정치적 성향은 대부분 이미지, 혹은 감정 따위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불완전한 성향들은 우리가 미래에 가지는 생각에도 크게 영향을 준다. 그냥 뉴스 보니까 누구는 나쁜 놈이라더라, 우리 부모님이 그러시는데 이러한 정책은 이래서 잘못된 거라더라 하는 것들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반공주의라는 전국 공통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했으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다양한 정치적 집단들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라는 것은, 특히 선거라는 방식을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지층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설령 그 지지층이 불완전한 신념을 가지거나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더라도 그들에게 한 표를 던져줄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지층을 어떻게 형성할까? 직접적으로 한 명 한 명 설득하는 것은 효율이 떨어진다.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전통 시장에서 상인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는 행위가 정말로 그 한 표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을 한 명씩 만나는 것은 소상공인들을 신경 써주겠다는 메시지이고, 그들 일부에게 형성된 이미지는 그 집단으로 퍼져나가 지지층을 만들어준다. 정치계를 향해 '선거철에나 서민을 신경 쓴다'는 비판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인들은 선거철에 서민을 과도하게 신경 쓴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서민이니까.
결국 정치인들은 어떤 집단을 타겟팅해서 지지층을 만들어야 한다. 집단 내에 공유되는 감정이 큰 사람들, 같은 편이라는 의식이 강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렇다면 그 집단의 선택은 무엇을 기준으로 할까. 어떤 집단이 그 집단 내에 첫인상을 심고 발전시키기 좋을까. 우리가 매일 보는 사람들, 우리가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 우리와 많은 이해를 공유하고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들. 우리가 사는 곳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준다.
우리가 1960년대쯤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자. 인터넷도 없고, SNS도 없다. 우리는 라디오나 신문 따위로 간간히 바깥세상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치적 메시지는 사실상 같은 공간에서 사는 이들이 입으로 전해주는 것일 뿐이다. 어디 지역은 아이들도 비열하다더라, 어디 사람들은 둔하고 멍청하더라 하면 그렇게 믿는 것이다. 뿔 달려있는 북한군의 이미지는 국민들이 멍청해서 먹혀든 것이 아니다. 본 적이 없는데 들리는 대로 믿어야지 별 수 있겠는가. SNS와 인터넷이 발전한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우리는 현실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술 먹다 정치 얘기도 하고, 동네에서 시위하는 것을 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정치에 대한 첫인상을 받고 이를 씨앗으로 신념을 발전시킨다.
결국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정치를 배우고, 정치인들은 이러한 점을 노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설득시킨다. 깊은 설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유를 대답할 필요도 없다. 왜 좋냐, 왜 싫냐 하면 그냥 그런 것 같다거나 그렇다더라 하는 정도로도 정치인들은 한 표를 가져갈 수 있다. 조금 더 정확히는 내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가 그런 것 같다거나, 내 주변에서 그렇다더라 하는 정도이다.
우리 모두가 정치를 깊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 티끌 하나가 태산을 바꾸지도 못하는데 정치를 깊게 이해하려는 것은 대부분의 이들에게 손해일 수도 있다. 정치는 그 점을 노리고 우리의 주변 분위기를 슬쩍 바꾸는 것만으로 우리의 한 표를 바꾼다. 그중 한 명은 그 첫인상을 발전시켜 강한 신념을 만들고 친구와 가족 등 누군가의 주변 분위기를 슬쩍 바꿔둔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공간을 주요 경로로 이동한다.
지역에 상관없이 사람을 보고 뽑아달라는 정치인들의 말은 너무나 공허한 외침이다. 공약 리스트의 첫 줄에 항상 등장하는 그들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