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머니 코고는 소리에 잠들다.

by 강신규

그녀는 자식을 사랑했고 자랑했다.

현대차 포니2를 몰고 산을 넘으면 조용한 시골길에 먼지가 오르고 금속이 부딪히고 연료 타는 소리로 요란하다. 이 진동과 울림은 멀리 간다. 그녀는 밭에서 일하다가 기계소음을 감지하고 허리를 펴고 암탉처럼 고개를 들어 사방을 돌아본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밭을 가로질러 길가로 나온다. 자동차의 속도와 맞먹는 그녀의 걸음은 기괴했다. 우리가 만나는 지점은 선 두 개를 그어 직각으로 접하는 꼭지점이다. 아마 아버지도 차의 속도를 할머니 뜀박에 맞춰서 조절했을 것이다.

가족은 늘 논길 옆에서 상봉했다.


금포 마을로 진입하는 그 길 왼편에 당시에는 논과 강이 있고 오른편은 산이다. 할머니는 밭에서 달려오던 선을 연장한 오른편 낮은 산에 묻혔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아버지도 그 옆에 묻혔다.




할머니는 나를 지극히 사랑하진 않았다. 딸린 식구나 하인처럼 여겼다. 나는 머슴의 의무를 했다.

할머니가 서울 가자면 차를 몰고 모시러 갔고, 집에 가자면 다시 차를 몰고 고향 마을으로 갔다. 할머니는 뒷자리 상석에 앉아서 덕담 한마디 없이 코를 골며 주무셨다.


고향 금포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는 메주, 시래기, 호박, 쌀을 날랐는데 작물에서 풍기는 흙냄새와 비료 인분냄새가 차 안에 오래 배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엔 식구들이 많았다. 촌수도 모르는 친척들이 한두 명씩 방 하나를 차지하고 한두 달 기거하다가 서울살림이 준비되면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오는지 가는지 몰랐고, 오늘부터 당분간 아래층 방에서 지내라는 명만 받았다. 아래층 방에는 할머니가 머무셨다. 나는 할머니와 같이 한 이불을 덮고 잤다. 할머니 등에서 흙냄새와 풀냄새가 많이 났고, 나는 이 냄새가 싫었다. 나는 시골냄새난다고 입 밖으로 말했다가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나기도 했다.


어느 밤, 귀신꿈을 꾸다가 깨어난 나는 너무 무서워서 “할머니, 할머니” 부르며 할머니 어깨를 흔들었다. 할머니는 깨지 않고 코를 골기만 했다. 나는 할머니 깨우기를 그만 두고 할머니 몸에 등을 대고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할머니 코 고는 소리에 맞춰서 숨을 들였다 내었다. 나는 마음이 진정되고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 혼자 방에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의사의 소견은 위암이었다. 담당 의사가 절차상 사무적으로 낸 의견이었다. 할머니는 살 만큼 살았다.

장례는 서울에서 치렀다. 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또 성당으로 관을 옮기면서 할 건 다 했다. 남은 일은 관을 금포로 옮기는 것이다. 나는 운구차 뒤를 운전해서 따라갔다. 문경 영순면까지는 평지다. 마지막에 꼬불꼬불 산 두어 개를 넘으면 금포 고향이다.

운구차가 앞서 천천히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뒤따라 느리게 운전했다.


이 길은 이웃마을 젊은 처녀가 시집간다고 처음 걸었던 길이다. 그 길로 그녀는 할머니가 됐고, 손자를 봤고, 살아서 실컷 다녔다. 이제는 죽어서 마지막으로 산을 넘는다. 그녀는 이 길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할머니 장례를 모두 마쳤다. 고모가 나에게 주문했다.


“할매방에 있는 옷장 내다가 태워라.”


나는 지게를 지고 옷장을 강가로 날랐다. 강가 주변은 풀이 없는 모래사장이다. 불을 피워도 안전했다. 이걸 태워 연기로 날리면 하늘에서 할머니가 다시 사물로 조립해서 사용하나보다.

나는 최대한 재가 날리지 않게 태웠고 어쩔 수 없이 남은 것은 모래에 슬쩍 묻었다.

작가의 이전글3일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