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상당 내용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진실게임하자"
데이팅앱 스피트데이트에서 연결된 영국 남성 J.
J는 영국의 명문대학 옥스브리지 출신이다. 정치와 경제를 전공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전공이 정치와 경제라고 했다.
영국에서 돈 많이 주는 금융회사에서 일하다가 삶에 회의를 느껴 한국에 왔다. 현재 영어선생으로 일하고 있는데 영국에서의 삶보다 훨씬 만족스럽단다.
달리기를 즐기고, 싸이클링도 좋아하며, 시사에 관심이 많아 신문을 자주 읽는다.
그중에서도 J가 가장 즐겨하는 한 가지. 진실게임이다.
"질문이 뭔데?"
"미래의 배우자가 꼭 갖춰야 할 2가지."
"음... 자식보다 나를 우선시하는 것. 자식은 커서 자기 짝 찾아갈 텐데, 나는 결혼 후 엄마로만 남고 싶진 않아. 계속 남편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고, 남편도 나를 볼 때 설레하고, 소중히 다뤄줬으면 좋겠어. 두 번째는 자식과 추억 쌓는 남편. 나중에 아이가 자랐을 때 아빠와 함께한 좋은 추억이 많았으면 좋겠어. 너는?"
"나는, 취미활동 같이 하는 것. 함께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두 번째는 꾸준히 육체적인 관계를 같은 것. 원활한 부부관계를 위해선 어느 정도 서로 육체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해."
J는 비혼주의자다. 결혼 생각이 1도 없다.
J 주변에 결혼 한 친구들 가운데 배우자랑 성관계를 1년 넘게 안 한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다들 매우 불행해한다며 결혼을 후회하는 친구들과 이혼한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의 결혼 생활을 그동안 지켜본 결과 결혼의 장점을 하나도 찾을 수없다고 했다.
"다음 질문. 너의 몸 중에서 하나만 바꿀 수 있다면 어디를 바꿀 거야?"
J의 진실게임은 계속됐다.
"하나만? 하하. 어려운 질문인걸? 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네. 너는 충분히 아름다워."
"하하. 다 사진빨이야."
J와는 그렇게 매일 저녁 퇴근하고 잠들기 전, 진실게임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질문의 주제는 다양했고, 진실게임인 만큼 J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영국 시골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J의 부모님, 명문대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느꼈던 패배감, 그들과 어울리지 못해 매일 술로 보냈던 대학생활, 약혼녀와 함께 살던 집을 박차고 나왔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성적 감정이 생기기보다는 진솔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한 명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오전, 우리는 이태원에서 만나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한 손에 신문을 들고 걸어오는 J는 약간 왜소한 몸에 부끄러움이 얼굴에 가득해 보였다. 내가 반갑게 인사하자 J의 얼굴이 벌게졌다.
우리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브런치를 시키고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았다. J는 여전히 내 눈을 똑바로 보기 힘들어했다.
"너 정말 예쁘다."
"고마워. 너도 귀여워."
J의 얼굴은 이제 귓불까지 벌게졌다.
브런치를 먹으며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J는 휴대용 체스판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J도 나처럼 체스게임을 무척 좋아한 댔다.
"너와 여기서 체스를 둘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우리는 브런치를 먹은 뒤 이태원 주변을 산책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각자의 일정을 위해 헤어졌다.
그날 이후 우리는 여전히 친구로 남아 시간이 남을 때마다 진실게임을 한다.
오늘도 J에게서 연락이 온다.
"진실게임하자. 오늘 하루 즐거웠던 일 3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