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Pawn)은 퀸(Queen)이 되리라

P. Q의 의미

by pq

Pawn to be Queen

폰(Pawn)은 퀸(Queen)이 되리라


"비교를 하자면, 그 여자는 고급 백화점 명품관에 있는 값비싼 명품이고,

너는 시장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거죽 데기야. 네가 감히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 때 사랑을 나누었던 남자는 자신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을 때,

오히려 당당하게 그녀와 나를 '명품과 거죽 데기'로 비유했다. 사랑에 대한 배신감보다 더 아팠던 것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 나의 자존감이었다.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분노와, 비참함, 배신감, 실망감, 허무함이 뒤엉켜 휘몰아치고 있었다. 뭐라고 욕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든 보복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그래서 더욱 비참했다.


그녀는 나보다 10살이 많았다. 돈도 많았고, 건물도 많았고, 그녀의 집 안에는 고가의 유명한 화백 작품들이 많았다. 나보다 이룬 것도 많았고, 알고 지내는 정계 인사들도 많았으며,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그녀가 명품이라는데, 그에 비한 나는 거죽 데기라는데,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겐 4천만 원이 전 재산이었고, 월세 50만 원에 살고 있었으며, 고가의 화백 작품들은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룬 것이라고는 학생 때 배낭여행했던 거 말고 딱히 없었고, 알고 지내는 정계 인사들이나, 나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 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돼지 같고 못생긴 년이 무슨 명품이야!"

기껏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꾸역꾸역 생각해 내어 내뱉었던 이 말은, 내 비참함에 의한 몸부림, 마지막 발악으로, 오히려 나의 자존감을 더욱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차가운 바람에 베이는 듯한 이 이별의 후유증은 컸다. 그와 헤어짐으로 인한 슬픔, 외로움, 허전함보다, 더 이상 일으킬 수 없을 것 같은 자존감, 부풀려진 열등감, 하찮음... 이런 감정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누구보다 나를 미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날이었다. 나를 함부로 대하며, 절규하며, 원망하며...


그런 내 마음을 다잡게 해 준 것은 엉뚱하게도 '체스'였다. 이별 후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던 중, 나는 휴대폰 어플 중에 체스 게임을 다운로드하였다. 전 세계 사람들과 체스게임을 즐길 수 있는 어플이었는데, 잠이 안 올 때마다 난 체스를 두고는 했다. 그러다 체스의 말 중에 하나인 폰(Pawn)으로 부터 위로를 받게 된 것이다.


폰(Pawn)은 체스에서 가장 약한 말로, 장기에서는 졸에 해당된다. 앞으로 한 칸씩 밖에 못 움직이고, 상대편의 말을 잡을 때는 대각선 방향으로만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칸씩만 이동이 가능한 폰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체스판 마지막 열까지 도달하게 되면, 킹을 제외한 다른 어떤 말로 변신이 가능하다. 이때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퀸(Queen)으로 변신하는 것을 택한다. 퀸은 오와 열은 물론 대각선으로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힘이 센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항상 제일 약한 말이라고, 쓸모없는 말이라고 평가가 저하되는 폰(Pawn)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폰이, 한걸음, 한걸음... 느려도 한 칸씩 한 칸씩... 자신보다 강한 퀸(Queen), 룩(Rook), 비숍(Bishop), 나이트(Knight)의 온갖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 전진해 나갔을 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마지막까지 도달했을 때 가장 막강한 퀸(Queen)이 될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 스스로가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 조급함이 느껴질 때, 절망적일 때, 나는 생각했다.


Pawn to be Queen

폰은 퀸이 되리라


나 또한 한걸음 한걸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꿈에 도달해 있을 거야.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 그저 묵묵히 한걸음 한 걸음씩. 하나씩 하나씩 헤쳐나가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어떤 외로움이 밀려와도, 어떤 고난이 몰아쳐도, 꿋꿋이 하루하루 살아가자. 한 칸씩 한 칸씩 전진하자.


그렇게 꾸준히 걸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Born to be Queen

당신은 여왕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원래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우리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여정이 조금 힘들 뿐인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이 날 이후 나의 닉네임은 P.Q가 되었다. 가끔 사람들이 P.Q가 무슨 뜻인지 물어볼 때가 있는데, 다 설명하면 길어져서 그냥 체스에서 따온 이름이라고만 이야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나는 P.Q를 하루에도 수십 번 되새긴다.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불안하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나만이 꿈꾸는 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위로하며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중이다.


Born to be Queen

퀸(여왕)이 되기 위해 태어났으니

Pawn to be Queen

폰(Pawn)은 퀸(Queen)이 되리라


모두가 저마다 꿈꾸는 퀸으로 변신하는 그날까지 한걸음 한걸음 포기하지 말고 걸어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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