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 꿈을

생생한 꿈 기억 하나

by pq

푸릇푸릇 잡초가 솟아 나있는 어떤 외딴곳. 그곳엔 예전에 성당이었을 법한 건축물 잔재가 남아있다.

배경은 아일랜드인 것 같다. 옆에는 잔잔한 호수가 있고, 보름달은 그 호수를 거울 삼아 자신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시퍼런 밤이다. 서늘한데 하나도 어둡지가 않다. 보름달이 밝아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그를 만나러 호숫가 옆 건축물 잔재가 남아있는 곳으로 향한다. 지붕을 지었던 뼈대는 남아있지만 지붕은 없다. 듬성듬성 커다란 돌덩이들이 예전에 헨리 8세 당시 지어진 성당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뻥 뚫린 천장을 바라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보인다. 너무나도 깨끗하다. 공기가 참 맑다. 나는 이 순간이 가장 설렌다. 서늘한 바람, 바람을 타고 내 코 속으로 전해오는 풀내음, 풀 내음을 따라 바라다보게 되는 하늘의 별빛 들. 어두운 밤이지만 전혀 어둡지 않다. 보름달은 따뜻하지는 않을지언정 태양보다 환하고, 그 보름달이 주는 창백한 신비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맨발이다. 신발을 신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맨발로 느끼는 차가운 돌의 촉감, 풀잎의 간지러움, 이슬의 습기......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흑백의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아무런 장식이 없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나는 그를 기다린다. 차가운 달빛의 에너지를 흠뻑 받으며.

그가 나타났다.

바라만 봐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존재, 그의 눈은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볼 때마다 어쩌지 못하는 그런 존재. 그와 함께 일 때 나는 비로소 진정 하나가 된다. 차가운 눈길을 맨발로 걸어도 포근하고 따뜻하다.

그와 함께 보름달 아래 눈이 내리는 돌담길을 걷는다. 그와 함께 보름달이 뜬 강가 옆을 걷는다. 주변은 너무나 춥지만, 나는 따뜻하다. 그와 함께 있기에 따뜻하다.

하지만 이 사랑이 오래갈 수 없다는 걸,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보름달이 지면, 그는 자신을 절제할 수 없으리라. 마치 보름달이 되면 반대로 늑대인간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떨어지기 싫어서 너무 오래 함께 시간을 했다. 그리고 시간은 찾아왔다. 그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초조해졌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지 않으면 그는 주변의 모든 인간을 학살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그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고, 서로 초초해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울부짖었고, 나도 울부짖었다. 그의 눈은 충혈이 되었고, 미쳐가는 듯했다. 입에서는 침이 흐르기 시작했고, 점점 그의 모습은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를 죽여."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울부짖었다. 나는 그에게 내 목을 내었다.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그에게 내 목숨을 내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하게 그를 살리는 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울부 젖고......

결국, 그는 내 목덜미를 물었다.

목덜미를 물면서 그는 괴로움의 울부짖음을 지었고, 나는 꿈에서 깼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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