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해지다
07월 25일 화요일 오후 06시 16분
화요일이다.
월요일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화요일이다.
토요일, 일요일 시간은 빠르게 가는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특히 사무실 안에서.
퇴근 시간 땡! 하자마자 곧바로 압구정로데오역을 향해 달렸건만...
역시...
나보다 발 빠른 사람들이 승강장 앞에 줄 서있다.
들어오는 지하철 안을 매의 눈으로 스캔해 보니, 앉아서 가긴 글렀다.
이제부터는 눈치 싸움이다.
제일 먼저 내릴 것 같은 승객 앞에 서있기.
장가방을 들고 마스크를 쓴 아주머니 앞에 섰다.
아주머니가 자주 장가방을 매만지며 지금 우리가 어느 역에 와 있는지 전광판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두 정거장 지나자 아주머니가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내 뒤에서 수다를 떨던 두 여성 가운데 한 명의 외침이 들렸다.
"언니, 빨리 저기 가서 앉아. 언니 오래가야 하잖아."
'아니... 내가 앞에 서 있었다고...'
나는 그들의 외침을 무시한 채 빈자리에 얼른 앉았다.
그러자 두 여성은 조용해졌고, 나는 그녀들이 눈에서 쏘아대는 따가운 레이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하철 안에는 말하지 않아도 승객들끼리 지키는 암묵의 규칙이 있는 줄 알았다.
예를 들어, 아무리 붐벼도 임산부배려석에는 임산부가 아닌 이상 앉지 않기.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내리면, 그 앞에 서 있던 사람에게 먼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권한 주어지기 등.
그런데 그런 암묵의 규칙 따윈 나만의 착각이었다.
사실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매일 붐비는 출퇴근 시간 도합 4시간씩 지하철을 타면서 많이 뻔뻔스러워졌다.
그전에는 내가 앞에 서 있다가 자리를 빼앗겨도 말 한마디, 싫은 티 하나 못 냈다.
옆자리에서 계속 조는 아저씨가 내 어깨에 기댈 때도 말 못 하고 조심스레 어깨를 빼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은 있는 힘껏 어깨로 얼굴을 퍽! 친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은 정글이다.
누구도 나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위해 자리를 맡아주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자리는 내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빈자리가 생기면,
어디선가 날라온 가방이 착지하고,
눈치와 달리기가 제일 빠른 자가 앉으면 그만이며,
임산부 배려석에는 아저씨가 앉는,
그런 뻔뻔스러움만이 지하철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
그것이 진정한 지하철 속 승자인 것이다.
나는 승자가 되기 위해 더욱더 뻔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