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일 동안

저예요, 반가워요

by 현주영

2025년 6월 3일.


그날은 21대 대통령 선거날이었다.


사실 그 전날에 굉장히 생생한 꿈을 꾸었다. 연예인 김희철이랑 동물원에 놀러 가는 꿈이었는데, 갑자기 김희철이 호랑이가 온다며 나만 두고 도망을 가더랬다. 당황한 나는 무서워서 어느 문 뒤에 숨었는데 엄청난 기운과 기척을 가진 호랑이가 내가 숨은 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커다란 앞발로 그 문을 확 열어젖히는 꿈이었다. 얼마나 강렬했던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깼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 호랑이에게서 특이한 점이 있었다. 검은 줄무늬가 없고 황금색과 흰색 줄무늬만 가진 호랑이였던 것이다. 호랑이 얼굴이 되게 선명하기도 했고 무늬와 색이 특이해서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바로 눈앞에서 본 것처럼 선했다. 상상의 동물인가 싶어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제로 지구상에 약 30마리 미만으로만 존재하는 희귀 호랑이였다.


"신기하기도 하지. 그런 동물은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꿈에 이렇게나 선명하게 나오다니."


image.png 너의 태몽




벼르고 별렀던 제과제빵 기능사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있던 날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가슴이 욱신욱신하며 통증이 예사롭지 않았다. 생리 어플을 보니 오늘이 딱 생리 예정일이었다. 평소 생리 예정일쯤 되면 가슴이 묵직하니 아프긴 하는데, 그날은 통증이 더 심했다. 겨드랑이와 가슴 쪽을 계속 문지르는 날 보며 남편은 어디 안 좋냐고, 괜찮냐고 연신 물었다. 생리 예정일이라서 그렇다 했다. 남편은 별 거 아니라는 듯한 날 보며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빈백에 팔자 좋은 자세로 누워서 하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계속했다. 꿈도 꿈이려니와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여느 때처럼 화장실로 향했다. 혹시나 싶어 의심 나는 달마다 종종 하던 그 테스트기 말이다.


"설마 오늘 시작하려나, 시험일이랑 안 겹치면 좋겠는데."


테스트기에서 권장하는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났다. 두 줄의 선이 보이고 임신이 내 눈으로 확인된 순간, 갑자기 나도 모르게 씨익하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막 감동의 눈물이 흐르거나, 놀라서 한동안 얼음이 되거나 하지 않았다. 어떤 느낌이었냐면,


'드디어 왔구먼, 킥킥' 하고 반가웠달까.


당연히 찾아와야 하는 10년 지기 친구가 어느 날 말도 없이 나에게 서프라이즈를 해 주려고 왔지만, 사실 난 그 친구가 저 골목 모퉁이를 돌 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맞이하는 그런 담백한 반가움이었다.


남편에게 임밍아웃할 때에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두 줄을 확인한 직후 그 임테기를 그대로 들고 가서 플스를 하는 남편 눈앞에 아무 말 없이 그냥 들이밀었다. 남편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았다. 나와 임테기를 번갈아 보더니,


"자기 코로나야?" 하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대답 없이 가만히 있는 날 보며 남편은 그제야 눈치챈 듯 깜짝 놀라면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의 임밍아웃은 그렇게 벅차지만 요란하지 않게, 낯설지만 당연하게, 처음이지만 자연스럽게, 마치 우리스럽게 끝났다.


KakaoTalk_20260402_103153940_04.jpg 너를 처음 확인한 순간_250603_by. 주영




하지만 두 줄을 봤다고 해서 산부인과에서 바로 임신을 확인받을 수는 없었다. 아직 초반기라서 아기집이 안 보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왼쪽의 임신선이 오른쪽의 대조선보다 더 진해져야 아기집이 보인다고 했다. 임신선이 대조선보다 점점 더 진해지기를 바라며 칠 년 같은 칠 일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일주일 뒤에 있을 제과제빵 기능사 시험도 포기했다. 아기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그깟 시험이 대수랴. 이제 내 몸은 쌀알보다도 작은 존재를 위해 극도의 가시를 돋아야 했다.


"네가 지낼 공간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주겠어. 얼굴 볼 때까지 무사히 지내고 있으렴."


때는 2025년 6월 3일.


그날은 21대 대통령 선거날이었고,


우리는 예정된 휴일 아침을 보내듯 반가우면서도 뭉근하게 서로를 확인했다.



4주 차 증상 : 가슴 통증, 생리 없음, 태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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