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책>(삼인, 2016)
시를 읽다보면 익숙한 말이 낯선 꼴로 눈에 밟힐 때가 있다. 그저 말이었던 단어 모양이 이런 꼴이었다는 게 새삼스러운 순간, 때론 문장이 품은 기운에, 때론 시 한편 전체가 주는 리듬감과 정취에 어물쩡거리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보았다
한 사람이 가고 여기 움푹 패인 베개가 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게 될 거요
그러나 여기 한 사람이 오고 반듯한 베개가 있다
저녁에는 일어나 저녁을 보았다
나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도 없었다
금방 또 저녁이 오고 있었다
(유진목, ’신체의 방’ 전문, <연애의 책>, 삼인, 10쪽)
어떤 시집은 다 읽고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 어떤 시 한편에 하나의 정념(情念)으로 오롯이 담긴 시편. 사랑은 블랙 코미디라고 말하는 듯한 시인의 청승맞은 사랑 고백은 꽤나 웃픈데 이렇게 문을 연 시집에 담긴 시들이 고루 근사하다. 누군가의 연애와 사랑의 정감을 훔쳐보는 것은 언제나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