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깐 설웁다>(허은실, 문학동네, 2017)
시집을 뒤적인다. 사 두고 채 다 읽지 못한 시집,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지지부진할 때, 우리 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다. 새해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떠나 보낼 것과 곁에 둘 것을 헤아린다. 어둑한 새벽 작은 불빛 아래 책상 위 어둠을 가르는 시집은 제 길을 찾는다.
“칼을 갖고 싶었지
고등어처럼
푸르게 빛나는
칼이 내 몸에 들어와
찔린 옆구리로 당신을 낳았지
바다가 온다
흰 날을 빛내며
칼이 온다”
(‘삼척’ 전문, 31쪽)
허은실은 쉽다. 쉽게 쓰는 것은 어렵다. 어려운 것은 어린 시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설웁다. 허은실 시 속에는 풍부한 감각들이 어린 시절 풍경과 어울려 펼쳐진다. 하지만 흘러 내리는 서정을 가르키고 이르는 말들이 죄다 어긋나고야 말 것 같은 불안을 깔고 위태롭게 서성인다. 그 서성임 속에 서늘하고 섬뜩한 것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고개를 내밀지 못한 불안은 몰래 뀐 방귀처럼 피식 웃음으로 실실 배어나온다. 허은실은 설웁다가도 이내 웃긴다. 그래서 오묘하다.
최승자 시인의 시같은 허은실의 서늘함은 수련(노력) 탓인 듯하고 천상 유쾌한 속내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시인은 듣는다. 우두커니 듣다가 물끄러미 부른다. 누군가를 해원하려는 영매가 되길 욕망하는 시인은 번번이 실패한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부르기, 시인은 듣고 또 듣고 듣는다, 그러다가 쓴다. 부르는 시(어)들은 군더더기가 적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빼고 지우는 행위다. 이름 지워진 이들을 애타게 부르는 시의 윤리, 시인의 윤리, 허은실 시가 좋은 이유다.
“허은실은 1975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