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진 시인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by 기성



조재룡(의 해설)을 벗겨낸 유형진은 쓸쓸하다, 아니 씁쓸하다, 아니 슬프다, 아니 웃기다, 아니 웃프다, 아니, 아니, 아니다. 사태에 대한 어떤 감정은 복잡다단해 땅의 어떤 말로도 기울 수가 없(을 때가 있)다. 해명할 수 없는 사태, 기쁠 때 누군가는 활짝 웃지만, 기쁜데 누군가는 하염없이 운다. 이 순간, 언어는 얼마나 허름하고 누추한가. 어떤 순간의 당연한 침묵은, 그래서 무엇보다 고귀한 말이다.


해명 불가능한 세상을 해명하려 안간힘 부리는 언어는 애처롭다. 언어를 탈각하는 세계, 권력에 둘러싸인 시인은 어떨까? 어떡해야 할까? 시의 윤리, 시학이 요청되는 순간, 유형진은 거기, 그 틈을 살며 말로 헤집는다. 이상해 뵈고 넘치는 많은 말은 유형진의 병증이다. 역사 속 지식인의 묵묵부답은 비겁한 처세였고, 맨 처음과 마지막에 말한 이들은 자주 시인이었다. 유형진은 말하고, 말한다, 유형진은 말이 많다.



어떤 문들은 안에서 잠겨 있어요

안에서 열고 나오지 않으면

바깥에선 열 수 없습니다

(…)

문을 열면 우리는

와하하하 웃거나 웁니다

문은 길과 숲과 같습니다

어쩌면 저 지글거리는 태양하고도 같습니다

얼음 같은 달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고문실이 아니라면 모든

문은

안에서 잠기지

바깥에서 잠기는 문은 결코 없습니다

(‘雲井 3’ 부분,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문예중앙, 2015, 60,61쪽)



어떤 침묵은 꿍꿍이고 어떤 말은 하나마나다. 아무튼 유형진은, 말이 많다. 당신이 혹 시에 관심있다면 올 가을과 겨울엔 유형진이다. 이 가을과 겨울, 조재룡의 해명을 얹은 잿-푸르른 코발트-빛 유형진이 딱이다. <피터 판과 친구들>이 뒹구는 <허니밀크랜드> 방문, 피터 판의 웃픈 친구들이 부리는 지랄맞은 청승은 울적한 가을에도 좋고, 당신의 첫 시집으로 유형진은 손색 없다. 하여튼 유형진은 말,이 참 많다, 믿거나 말거나.



문학동네 포에지로 다시 발간되었다



한 때 유형진의 <피터래빗 저격사건>을 찾아 헤맸다. 절판은 아닌데 손에 넣을 수 없었다. 헌책방을 몇 번이고 돌았는데, 포기 혹은 잊을 때쯤 손에 넣었다. 하도 <피터래빗 저격사건>이라길래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고 싶었다. 해설은 우선 해명(解明)이어야한다. 변명하거나 비평연하지 말고 해명의 불가능성을 해명하더라도 근성을 보여주면 좋겠다. 읽을수록 수렁에 빠뜨리고 하나마나한 소리로 학자연하며 독자를 우습게 보는 해설, 마! 해명의 안간힘, 유형진이 허윤진을 거쳐 조재룡에 이르렀다. 베일이 한 꺼플 더 벗겨졌다. 2005년의 첫 이륙이 2011년 화려한 비행을 거쳐, 2015년엔 더 두근두근 거린다. 유형진의 빨간약,은 정말이지 새빨갛다.



덧)

2015년 이 시집 이후 유형진의 시집은 아직이다.

궁금하고 불안하다.

그가 어디선가 계속 시를 쓰고 있길 제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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