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고 독학
나의 발효 선생님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발효는 어디에서 배우셨어요?”
한 분에게 배웠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제 발효 공부는 한 명의 스승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발효를 따라가며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와인에서 시작된 발효
발효를 처음 체계적으로 접한 것은 와인이었습니다.
예산에서 사과 와인을 만드는 전문가에게 사과 와인 양조를 배웠습니다.과일 속 당이 효모에 의해 술이 되는 과정, 발효의 기본적인 구조를 그때 처음 이해했습니다.
와인은 발효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좋은 교과서 같은 존재입니다.원료가 단순하고, 발효 과정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맥주에서 배운 발효의 기술
맥주는 두 분에게 배웠습니다.
바네하임의 김정화 대표님,그리고 태평양 조 양준석 선생님.
맥주는 와인보다 훨씬 공정적이고 기술적인 발효입니다.
당화, 효모 관리, 발효 온도, 위생 관리 등발효를 하나의 공정으로 이해하게 된 계기가 바로 맥주였습니다.
막걸리는 배상면 선생께
막걸리는 고 배상면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한국 술의 세계는 와인이나 맥주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룩이라는 복합 미생물,쌀이라는 전분 원료,당화와 발효가 동시에 일어나는 병행 복발효.
막걸리를 통해 발효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문화라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치즈에서 배운 미생물의 세계
치즈는 치즈마을을 만드신 스위스 유학파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치즈는 유산균 발효와 숙성의 세계입니다.
시간이 맛을 만든다는 것,미생물이 식감을 바꾼다는 것.
발효가 얼마나 다양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치즈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커피에서 배운 향의 언어
커피는 대만에 가서 배웠습니다.
커핑, 블렌딩, 브루잉.
커피는 발효라기보다 향을 읽는 공부였습니다.
향을 언어로 설명하는 법,맛을 분석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술의 향을 설명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학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제가 공부한 발효의 많은 부분은 독학입니다.
누룩은 독학이었습니다.
고추장, 된장, 장류,미소와 쇼유 같은 것들도 기술적으로 배운 분들은 있지만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스승은 없습니다.
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청국장, 낫토 같은 단백질 발효도 대부분 독학에 가깝습니다.
왜 독학이 많았을까
발효를 배우면서 느낀 어려움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발효 교육이감각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이 정도”“이 느낌”“이 향”
하지만 발효는 사실정량과 정성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온도, 시간, 수분, 미생물
이런 것들이 정리되지 않으면기술은 쉽게 전수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우는 동시에스스로 정리하는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발효 철학을 만든 공부
발효 기술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공부는 따로 있습니다.
동의보감입니다.
약 18개월 동안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동의보감을 공부하면서 음식, 균, 몸의 관계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발효는 단순히 식품 기술이 아니라 생명과 시간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전들을 통해 지식을 정리하는 틀을 만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지금 돌아보면제 발효 공부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이 이어진 지도 같습니다.
와인, 맥주, 막걸리, 치즈, 커피, 누룩, 장류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지금의 발효 이해를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저는특정 발효를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
발효라는 세계 전체를조금씩 따라 걸어온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