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후추

캄폿 후추를 말하다

4. 킬링필드와 함께 몰락한 후추 농업

by 하얀술

킬링필드와 함께 몰락한 후추 농업

캄폿 후추의 명성은 1975년 크메르루즈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크메르루즈 게릴라군인들이 많은 후추농장들을 불살랐다고 합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만, 여하튼, 인간들만큼이나 후추도 혹독한 킬링필드 시대를 몸소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이렇듯 명맥이 거의 끊겼던 캄폿 후추가 다시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0년대 중후반부터라고 합니다. 내전이 끝나고도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죠. 수십 년 만에 다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자, 전쟁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후손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재배법을 기억해 내 후추를 다시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내전으로 전국토가 황폐해진 가운데 이들 농민들은 후추 재배에 적잖은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십 수년 넘게 쓰러진 지주목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고, 빗물에 씻겨 내려간, 기름진 붉은 토양을 재정토해야 했으며, 반복된 홍수와 가뭄에 흔적조차 사라진 관계수로를 다시 파고, 재건하는 데만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열정과 땀의 노력에 하늘도 감복했는지, 마침내 후추농사가 작은 성공의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말 기준 고작해야 4~5톤 생산량에 불과하던 캄폿산 후추는 꾸준히 생산량이 늘어, 2017년 현재 무려 80톤까지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상태입니다. 불과 10여 개도 채 안 되던 생산 농가 수가 그 사이 320여 개 농가로 늘어났고, 재배농지가 180헥타르 땅까지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2010년 지리적 인증표시제 도입에 따라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인증마크를 획득하자, 캄폿 후추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게 됩니다. 그 여파로 인근 땅값까지 덩달아 3~4배 이상 오르는 현상까지 일어납니다.

현재 캄폿에서 생산되는 후추는 거의 8~90%가 유럽과 미국 등으로 수출됩니다. 과육이 숙성하기 전에 따 건조해 생산해 낸 검은 후추는 kg당 수출가격이 17불이 넘을 정도로 고가에 팔립니다. 잘 익은 붉은 후추는 이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가고, 겉껍질을 벗겨나야 하는 등 손이 훨씬 더 많이 가는 흰 후추는 이보다 최소 30% 이상 더 비싸게 팔린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다른 지역 후추가 kg당 4불 수준에 팔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생산 농가 입장에선 정말 좋은 가격을 받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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